그 후 많이 달라졌다. 기와집 모양을 흉내 내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대신, 전통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특히 더 그랬다. 1986년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지었던 잠실의 올림픽주경기장은 전통 도자기의 곡선을 살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위해 세운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경기장은 방패연과 황포돛배의 이미지를 살렸다. 2005년 개관한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육중한 건물을 통해 전통 성곽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수년 동안의 논란 끝에 지난해 최종 확정된 서울시청 신청사 디자인의 경우, 우리의 처마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서울시가 지난달 발표한 한강 노들섬 복합문화예술시설의 디자인은 우리 전통 어깨춤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중요한 공공 문화시설의 설계 디자인에 있어 전통 이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공모를 통해 설계안을 뽑는 현상설계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전통 이미지라는 것이 알 듯 모를 듯하다. 성곽 이미지라고 했지만 성곽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처마선이라고 했지만 처마선의 이미지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멀리서 조감도를 보면서 어깨춤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신명나는 춤사위의 어깨선 같지만, 혼자서 바라보면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설계자의 의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괴리라는 생각도 든다.
왜 그런 것일까. 이에 대해 한 건축가는 “심사에 통과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담기는 건축물이다. 여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전통 이미지가 없으면, “전통이 어디로 갔느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많다. 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벗어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것이 전통 또는 전통 이미지다. 전통의 이미지를 살렸다고 하면 응모자도 심사위원도 모두 명분이 생긴다.
전통 이미지는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는 전통 이미지를 차용한 건축물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기와집도, 전통 이미지도 모두 우리 사회가 건축가에게 떠넘긴 부담의 결과물이다. 박물관과 같은 역사적 문화시설이 기와집일 필요는 없다. 전통 이미지가 들어 있지 않아도 좋다. 지금 여기서 꿈틀거리는 싱싱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도 필요하다. 수십 년, 수백 년이 흐르면 지금의 현대적 이미지도 매우 소중한 전통이 된다. 전통은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광표 사회부 차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