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한미 FTA 美측 발언 멋대로 해석해서야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0분


“미국에서 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한마디만 하면 한국 정부나 정치권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내 멋대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미 의회 관계자는 13일 FTA와 관련한 미 관료나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과민반응이 부담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난주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의 미 상공회의소 모임 발언에 대한 반응도 ‘부담스러운 반응’에 포함됐다. 대니 세풀베다 대표보는 파나마, 콜롬비아, 한국과의 FTA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재 불거진 이슈들을 협정문(text)의 재협상 없이 다룬다는 게 USTR가 의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선 한미 FTA를 현 상태대로 추진할 뜻을 시사한 것처럼 해석됐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국회에서 “USTR 대표보가 미 상의와의 공식 만남에서 재협상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발언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미국 측이 통상정책을 검토하고 있는데 전반적 추세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도 “미국 측이 재협상 의사가 없는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세풀베다의 발언 취지는 이미 서명한 본문을 건드리지 않은 채 현안을 다루겠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자동차(한국), 노동인권(콜롬비아) 등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부속서 등 별도의 형태로 다루는 게 낫다는 방법론을 말한 것이다.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도 그런 방식이었다. 김 본부장 등이 발언 내용을 잘못 전달받았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확인 결과 주미대사관의 보고 내용은 비교적 정확했던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려고 주관적 해석을 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더구나 세풀베다는 의회관계 담당일 뿐 FTA 주무자도 아니다.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는 “기본적으로 한미 FTA를 둘러싼 미 의회의 여건은 2007년 가을 이래 거의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지도부와 상임위에는 “자동차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不可)하다”는 반대론자들이 포진해 있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제 겨우 검토에 나선 상태다. 한국 FTA는 파나마 FTA보다도 처리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미국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표정이 변하는 건 안타깝다. 더구나 시구(詩句)를 재해석해 제2의 창조를 하는 평론가 같은 행태가 보태지면 더 초라해 보인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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