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사명]동남아는 전략적 동반자다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0분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에 출범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유럽연합(EU)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 지역협력기구로 평가된다.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대화 관계를 수립했다.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에서 냉전의 끝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의 하나였다. 1990년대 후반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옛 사회주의 국가가 모두 아세안에 가입함에 따라 냉전의 유산을 말끔하게 정리했고 아세안은 현재 한국의 주요 무역 대상 지역 3위를 차지할 만큼 활발한 교역을 펼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못지않게 아세안이 한국의 주요 상대국으로 부상했다는 말이다.

한국과 동남아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와 동남아가 별개의 지역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계된 하나의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97년 동남아와 한국을 난타했던 경제위기 직후에 부상한 아세안 10개국 및 한중일 3개국의 협의체 아세안+3은 동아시아 차원의 광역적 지역협력에 대한 역사적 요청을 반영한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의 주도 역할에 따라 ‘평화, 번영, 진보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제출되고 경제 금융 사회 문화 정치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 차원의 협력 사업을 착실하게 전개하고 있다. 사회 문화적으로는 취업과 결혼을 위한 한국으로의 이주와 사업 유학을 위한 동남아로의 이주, 여기에 한류 현상에 의해 한국과 동남아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동남아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은 단순한 문화 교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세계 경제위기는 중국과 일본까지 강타했으므로 동아시아공동체의 협력이 다시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 외환위기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금융협력 규모를 작년에 합의한 800억 달러에서 1200억 달러까지 증액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러한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세계화의 길목에 숨어 있는 위기는 세계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은 물론 지역적 차원까지 복합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위기 요인이 서로 맞물려 있고, 위기의 파급 효과가 광범위하게 미치므로 세계적 또는 국가적 차원은 물론 지역적 차원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코끼리 두 마리가 싸우면 풀밭이 거덜 난다’는 아프리카 속담과 ‘코끼리 두 마리가 사랑해도 풀밭이 망가진다’는 스리랑카 속담이 있다. 풀밭을 망치지 않으려면 공정한 지역 질서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19세기 후반 청일전쟁과 20세기 중반 태평양전쟁이 실증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균열이 생기면 한국과 동남아의 위상과 역할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동남아의 연대는 단기적으로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위한 전략적 고리이며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전략적 다리이다. 동남아의 지역통합과 동북아-동남아의 교류 활성화가 동아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이유이다.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 관계 수립 20주년에 즈음하여 지난달 13일에 개관한 한-아세안센터와 6월 초 개최될 예정인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한국에 대한 동남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실증한다. 동북아시대라는 시대착오적인 시간의식과 동북아 중심이라는 자국 중심적인 공간의식을 탈피하는 계기가 된다면 무척 발전적일 것이다. 한국과 동남아의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의 중심으로서 한-아세안센터의 지속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과 동남아가 전략적으로 서로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박사명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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