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석준]형사조정제도 입법화 신중해야

  • 입력 2009년 4월 16일 02시 58분


《이 글은 이용우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장의 기고(형사조정제도 입법 서두르자·7일자 A29면)에 대한 반론입니다.》

법무부에서 추진하는 형사조정제도 입법을 서두르자는 기고문이 동아일보에 실렸다. 형사조정제도란 범죄 피해자가 본 피해 회복을 위해 검사가 수사 중인 사건을 조정절차에 회부하면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법인의 관리 아래 있는 형사조정위원회가 피의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주선하는 제도이다. 범죄행위로 곤경에 처한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피해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형사조정제도 입법화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형사조정은 형이 확정되기 전에 범죄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과 충돌한다. 법무부 안에 따르면 검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도 사건을 형사조정에 회부할 수 있으므로 조정 참여를 권유받은 피의자는 억울해도 조정을 거부하거나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입을 형사상의 불이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조정이나 합의에 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형사조정을 입법화하려면 최소한 피의자가 자백했거나 충분히 조사가 이뤄진 이후에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는 외국에서도 피의자에 대한 사실상의 합의 강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심지어 형사조정은 재판이 끝난 이후에 해야 한다는 입법론을 제기하는 나라도 있는 것으로 안다.

둘째, 단순한 민사 분쟁적 사건의 형사화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고소고발사건은 일본보다 수십 배 이상 많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고소지국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지금도 가뜩이나 고소사건이 난무하는데 수사 중인 사건을 별 제한 없이 형사조정에 회부한다면 합의를 받아낼 목적으로 고소부터 하고 보는 현상이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무부 안은 이 점에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

셋째, 국가형벌권의 실추 문제이다. 법무부가 형사조정제도를 도입하려는 데에는 많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 경우 충분히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채 적당한 수준의 민사상 책임을 부담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함으로써 형사조정제도가 자칫 교활하거나 돈 많은 범죄자를 보호하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형사조정기관의 중립성과 전문성 문제이다. 법무부 안은 피해자 지원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범죄피해자지원법인에 형사조정을 맡기고 있어 형사조정이 고소인 위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자칫 억울한 합의 강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대화를 거중 조정할 중립적 전문가를 확보하는 일은 형사조정제도의 성패를 좌우한다. 조정자의 지위를 권력으로 여기거나 위압적인 태도로 절차에 임해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피해자의 심리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고통을 심화시키는 사례가 발생하면 비록 소수에 불과하더라도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할 것이다.

형사조정도 범죄사건 처리 절차의 일부이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여 예상 가능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해소할 구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일부 선진국의 사례를 앞세워 조급하게 법제화를 추진한다면 사회 정의가 교란되고 형사사법 전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크다. 범죄 피해자 보호에 관한 한 우리보다 앞선 일본도 아직 형사조정제도의 입법화를 본격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부디 신중한 검토와 면밀한 준비를 촉구한다.

이석준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