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영]추경 심의, 기준은 뭔가

  • 입력 2009년 4월 16일 02시 58분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인 28조9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현재 국회가 심의 중이다. 경색된 금융시장으로 금융정책의 효과성이 낮아 재정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래서 세계 각국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1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일본과 중국도 각각 36조 엔 규모와 2조5000억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2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내년 말까지 5조 달러 규모의 재정 확대에 합의했다.

신규 SOC 투자 자제를

추경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만 추경의 규모와 내용에는 이견이 있다. 먼저 추경의 규모가 과도하며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추경을 국회가 원안대로 통과시킬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970년대 석유 파동기의 재정적자 수준인 ―4.0%대와 외환위기 당시의 ―5.1%를 넘어서는 ―5.4%로 예상된다.

명시적인 추가 재정 지출에 덧붙여 부실기업과 은행의 정리를 위해 40조 원의 구조조정 기금을 조성하는 안도 추진된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그랬듯이 이런 구조조정 기금의 비용은 결국 정부가 부담한다. 암묵적인 재정 확대까지 고려한다면 현재의 재정적자 규모는 과도해 보인다. 더욱이 중장기적으로 재정의 건전성을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재정수지 적자 규모와 국가 부채의 중장기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 합의하고 공표해야 한다.

추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저소득층 지원, 중소기업과 자영업 지원, 일자리 창출 등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자영업자, 실업자에 대한 지원이 주를 이룬다. 이는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예산안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너무 많이 포함돼 효과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신규 SOC 사업의 경우 효과성을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시작했을 수 있고, 일단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사업의 특성상 경직된 지출 항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신규 SOC는 피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복지 지출에서도 경기회복 이후 지출 축소가 가능한, 한시적인 성격의 지원이 바람직하다.

개인소득세는 감세 말아야

국회의 추경 심의과정에서 감세에 대한 논란도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는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개인소득세 등 거의 모든 세목에서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감세의 혜택이 현재 세금을 납부하는 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 정부의 감세정책은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러 세목 중에서 형평성 제고라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세목은 개인소득세이다. 개인소득세의 최고세율 인하를 연기 또는 폐기할 경우 재정수지 적자규모가 축소되고 형평성이 제고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조치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수용도를 높일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에는 약하나마 희망적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래 경제 전망을 보여주는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높아진 수출기업의 경쟁력과 원화 절하가 결합돼 큰 폭의 무역수지 흑자가 나타나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가 외환위기 당시 V자의 빠른 경기 회복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는 매우 희망적이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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