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新암행어사 시대’ 누가 초래했나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역대 정부에서 공직자들은 청와대 근무경력을 영예로 여길 정도였다. 권위주의 정부 때는 각 부처에서 엘리트로 손꼽히는 관료라야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 이후 오히려 ‘옥석(玉石) 구분’이 제대로 안 됐다. 대통령선거 캠프와 정당 사람들이 충분한 검증을 받지 않은 채 한자리씩 차지하면서 물이 흐려졌다.

지금의 청와대에도 공직윤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비서관 행정관이 적지 않아 수십 명이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집중 감찰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중 상당수는 이미 청와대 근무 부적격자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5일의 청와대 행정관 성(性)접대 사건이 이번 감찰의 계기가 됐다는데, 이 사건 자체가 예외적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근무태도 불량, 부적절한 민원 청탁, 업무와 관련 있는 일선 공무원 및 업자들과의 유흥, 금품수수 소지 등 문제가 있는 비서관 행정관이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집중 감찰 대상으로 지목돼 24시간 밀착 감시를 받아야 할 정도의 비서관 행정관이라면 처음부터 인사(人事)가 잘못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의 일부 실세(實勢)가 도덕성, 자질, 적재적소(適材適所) 같은 조건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은 채 ‘내 사람들’을 청와대에 밀어 넣는데 급급해 청와대 인사가 혼탁해졌다는 지적이 정권 초기부터 나왔었다. 청와대에 ‘21세기판 암행어사’가 떠야 하는 상황은 ‘집권 전리품 인사’로 인해 자초된 셈이다.

행정관 성접대 사건은 청와대 내부의 인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청와대는 조만간 ‘직원 윤리강령’을 제정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뿌리가 썩은 나무는 아무리 바로 세우려 해도 세우기 어렵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심하거나 자질과 자격이 의심스러운 비서관 행정관은 지금이라도 철저히 재검증해 털어내야 한다. 청와대부터 이 같은 인적 자정(自淨)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일이 터질 때마다 미봉이나 하려 든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고여서 썩는 물’이 불어날 소지가 크다.

청와대에는 밤낮없이 몸을 던져 일하는 비서관 행정관도 많지만 구정물이 맑은 물마저 흐려 놓는 법이다. 기왕에 시작한 이번 감찰 활동에서 문제가 있는 비서관 행정관을 샅샅이 찾아내고 솎아내야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청와대발(發) 국정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민생의 고통이 걷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경제정부’를 내건 청와대의 비서관 행정관들이 또 사고를 친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국정의 추진력은 급전직하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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