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60여 년간 세계경제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성장동력 역할을 한 국제무역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교역의 급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최근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들이 보호무역조치를 취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세계교역의 감소가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최근 두 번에 걸쳐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국제무역과 관련해 여러 가지 합의를 도출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조치의 현 수준 동결(standstill)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와 시한을 제시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 후 G20 국가를 포함해 많은 국가가 추가로 보호무역조치를 취했고 DDA 협상은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등 워싱턴 합의는 구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말로만 ‘보호무역조치 동결’
이달 초 개최된 영국 런던 G20 정상회의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호무역조치의 동결 기간을 연장하고 이미 취해진 보호무역조치는 원상복귀(roll-back)하자는 합의를 했다. 또한 WTO가 중심이 돼 각국의 무역정책을 감시하고 WTO 규범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국가의 리스트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DDA 협상에 대해서는 조기타결을 촉구하는 원칙적인 수준의 합의만을 했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런던 회의에서의 DDA 협상 관련 합의에 다소 실망을 나타냈다. 사실 G20 정상회의는 금융 및 거시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한 회의다. 따라서 G20 정상회의에서는 그 초점이 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에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DDA 등 세계교역질서에 대한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G20 회의의 성격과 한계는 둘째로 치더라도 더 심각한 문제는 G20에서 합의된 세계교역 관련 합의사항을 주관해야 할 WTO가 최근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WTO가 설립된 1995년 이후 120개가 넘는 지역무역협정(RTA)이 새로 생겨났으며 2001년에 출범한 DDA 협상은 수차례 시한연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타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등 WTO의 신뢰와 위상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교역이 축소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WTO의 신뢰 회복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DDA 협상이 어떤 형태로든 조속히 마무리되어야 한다.
DDA 협상이 지금까지 타결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원인의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주요 개발도상국 사이에 의견 차가 크기 때문이며 이들 국가는 거의 모두가 G20 회원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DDA 협상의 조속한 마무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G20 회의에 참여하는 주요 선진국과 개도국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WTO 사무총장은 앞으로 개최되는 WTO 각료회의에서 G20 체제를 최대한 활용해 DDA 타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 도출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국제교역 중재자 역할을
이렇듯 G20 회의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국제무역, 기후변화, 개도국 지원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논의를 리드하고 주요국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G20 체제는 한국에도 바람직하다. G20 체제하에서 한국은 중견국가로서 중간자 또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지난 두 차례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유럽국가 등 선진국 간의 이견뿐 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바 있다.
G20 정상회의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세계경제를 관리하는 새로운 체제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G20 정상회의가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같이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DDA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데 G20 정상회의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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