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상혁]‘포털 책임’ 대법원 판결의 의미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인터넷상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나 댓글에 대한 포털 사이트(인터넷 종합정보제공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묻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과거의 대법원 판결보다 포털의 책임을 더욱 엄격히 묻는 내용으로 포털뿐만 아니라 관련 인터넷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포털의 언론기관 성격을 강조했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넘어서 포털이 서버에 기사를 보관하면서 선별하고 게시한 경우, 기사가 명예훼손의 내용을 담았다면 언론사와 마찬가지 기능을 했으므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기사 보관 및 선별, 게시 등 일련의 행위로 명예훼손적 내용을 인식하고 선택하여 전파한 행위를 했다고 보고 언론에 상응하는 적극적인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둘째, 포털이 관리하는 게시판 등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을 인정했다. 명예훼손적 불법성이 명백하고 게시물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음이 명백히 드러나며, 기술적 경제적으로 관리 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스스로 삭제하고 차단할 주의의무가 있고 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과거 판례가 포털의 책임을 인정할 때 피해자에게서 구체적 개별적인 삭제 및 차단 요구를 받은 경우에만 책임을 인정한 데 비해서 더욱 엄격하다.

포털에 엄격한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례는 최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및 포털로 대표되는 인터넷상 폐해의 규제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최진실 자살사건 등 인터넷상에서 나타나는 많은 폐해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개선 논의가 있어 왔으며, 정보통신망법이나 저작권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 작업이 한창인 지금 충분히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 논쟁의 종결점이 아니라 또 다른 논쟁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논쟁’은 위 대법원 판례에서 나타난 대법관 3인의 별개 의견에서 이미 예견되고 있다.

대법원의 별개 의견은 우선 인터넷의 순기능을 생각한다. 인터넷을 참여적 대중매체로 평가하고, 규제 확대가 가져올 표현의 자유에 대한 냉각효과를 우려한다. 오히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규제기준이 명확성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음도 지적한다. 따라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이론을 적용하여 피해자에게서 삭제 요구를 받아 게시물의 불법성을 명백히 인식했고, 삭제 등 조치가 가능한 경우로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포털의 법적 책임을 강조한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포털이 인터넷을 통해 위험원을 창출 관리하면서 직간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으므로 적절히 관리할 주의의무가 있다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바탕을 둔다. 명예훼손죄가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인데도 포털이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임의로 판단해 게시물을 삭제하는 조치는 부당하며, 위와 같은 의무를 확대 적용하면 포털 사업자에게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상시검열의무를 인정할 가능성이 있어 부당하다는 반론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인터넷으로 인한 폐해와 독과점 포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규제의 목소리는 타당한 면이 많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문제되는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실과 의견의 구별, 의견과 전제사실의 구별, 공공의 이익이라는 다의적 법조항의 판단은 전문가로서도 결코 쉽지 않다. 이런 판단을 법률 비전문가인 포털의 게시물 관리자에게 일임하는 판결은 분명 문제다. 만일 포털 관리자가 대법원 판례에 따라 법적 책임에 대한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문제가 될 만한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해 나간다면 포털의 또 다른 폐해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 슬기롭게 적용하는 일은 남은 사람의 몫이다. 이번 기회에 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 제외, 악의의 행위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등 명예훼손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사회 구성원이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소중함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기회가 된다면 판결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본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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