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경제파탄-고립 자초하는 北의 협상방식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21일 북한 개성에서 열린 남북한 당국자 사이의 협상 소식을 들은 국민은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북 사이에 합의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뒤집는 북한의 요구도 황당하지만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통지한 뒤 남측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행위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일본 중국 북한과 협상을 해본 외교관들은 3국의 협상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전한다.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합리적 신사로 통한다. 우선 협상에 내놓는 제안부터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최종 타결안과 별 차이가 없다.

중국인은 물건을 팔 때 일단 높은 가격을 제시한 뒤 상대의 협상력을 봐가며 깎아주기를 좋아한다. 중국 정부 역시 국제협상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목표가 100이라면 우선 10배를 불러놓고 협상을 시작한다. 중국은 현재 한국과 협의 중인 해양경계 협상에서 해양경계 중간선을 군산 앞바다까지 주장해 한국 측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없다고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양국의 최고지도자급 인사가 상대국을 방문하는 등 중요 행사가 있을 때면 갑자기 해묵은 협상이 진전되거나 타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상을 해본 사람들은 이는 ‘협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타협의 기본틀이 통하지 않는다. 협상전략이나 기술도 필요 없다. 남북한 협상 팀은 앉자마자 책상을 치고 고함부터 지르는 게 상례다. 심지어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1994년 남북 협상에서 ‘서울 불바다’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다. 이 때문에 남북 협상은 ‘기 싸움’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황당한 주장이나 태도는 학자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북한 학자들과 국제세미나를 추진했던 중국의 저명한 학자는 “북한 사회과학원 학자가 평양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대가로 50만 달러를 요구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협상을 일반적인 국제무대에서의 협상으로 생각했다가는 ‘백전백패’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협상기술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풍부한 경험이 없이는 북한의 협상전술에 말려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6년 넘게 끌어온 6자회담이 최근 아무런 성과도 없이 파탄 직전까지 몰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협상기술로 얻은 것은 국제무대에서의 고립과 경제파탄뿐이다. 북한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는 ‘비장의 무기’가 아니라 ‘자멸의 첩경’인 것이다.

하종대 국제부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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