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로 석유메이저들이 사업을 축소하는 마당에 이 회사는 대서양 유전개발 등에 230조 원이나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담한 계획의 바탕에는 금융위기에도 비교적 탄탄한 브라질 경제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브라질도 다른 나라처럼 성장률과 주식값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늘었지만 버틸 만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 보고서는 세계 주요 34개국 중 올해 경기 후퇴를 피할 나라로 유일하게 브라질을 꼽았다. 외국 언론들은 최근 잇달아 브라질의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조명했다.
그 한가운데는 실용주의 지도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자리한다. 그는 집권기간 내내 실용이 뭔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철강노조원으로 수십 년간 ‘자본주의 타도’를 외쳤지만 지금은 은행가와 기업 이사회를 치켜세운다. 부유층과 해외자본에도 우호적 정책을 펴 파이를 키웠다.
같은 좌파로 남미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걷는 길과는 다르다. 차베스는 석유메이저를 쫓아내고, 외국계 은행마저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책을 서슴없이 건네기도 한다. 차베스가 이념에 집착하는 동안 룰라는 실리를 챙겼다.
그렇다고 룰라가 뿌리마저 잊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브라질 사회의 고질병인 가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그는 사회개혁 시스템을 고집스레 시행했다. 빈민층 아이에게 백신을 놓아주고, 학교를 보내도록 하는 데 27조 원을 풀어 성과를 거뒀다. 한 손에는 기업을, 다른 손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윈윈전략이다.
그의 최대 강점은 협상력이다. 옛 동지들은 “그는 항상 협상가였다”고 말한다. 이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영국 런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주요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교력을 발휘했다. 자유무역의 깃발 아래 이해를 같이하는 개발도상국들을 묶어내 한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남남교류’를 명분으로 아프리카 카리브 해 연안 35개국에 대사관을 개설해 영향력을 강화했다. 사실상 수출 시장의 확대인 셈이다. 오바마와 교류하면서도 남미가 미국의 앞마당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은근히 반대해 왔다. 타임 최근호는 룰라의 브라질을 슈퍼파워(super power)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내년 12월에 퇴임하는 그의 현재 지지율은 75%를 넘는다. 다음 대선에서 그가 미는 후보를 찍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브라질에서 중산층이나 서민들에게 꿈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집권 초 전체 인구 1억9000만 명 중 42%였던 중산층이 지금은 53%로 커졌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됐으며, 기반이 넓어진 중산층은 다시 사회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브라질 사회에는 부패나 열악한 교육환경, 폭력 등 여전히 해결할 과제가 많지만 이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삼바 춤과 펠레로 유명한 나라, 이제는 룰라라는 이름으로도 기억될지 모른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