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자들의 논리도 탄탄하다. 헤지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는 미국 경기가 회복되려면 앞으로 수년 동안 몇 번의 바닥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대공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1930∼1932년에도 증시는 세 차례에 걸쳐 20% 이상 상승한 적이 있다. 그는 최근 회복세를 ‘베어마켓 랠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주 폴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미 예상된 일이지만 동유럽권 사정은 당분간 호전될 기미가 없다. 게다가 영국마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는 소식도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한국 등 주요 20개국(G20)의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소비가 쉽게 돌아설 수 없는 상황도 조기 경기회복설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사실 경기의 바닥과 상투는 시간이 지나야 명확해진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전미경제조사위원회(NBER)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추계나 경기 사이클을 1년 반에서 2년 뒤 확정시킨다. 1991∼1992년 미국이 불경기를 겪을 때 당시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발표했었지만 수년 뒤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또 미국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플러스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제위기로 인한 불경기가 이미 2007년 12월부터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경기 논쟁도 의미 있지만 지금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이 위기의 본질적인 성격과 위기 이후에 겪을 큰 변화다. 위기는 반드시 지나가게 돼있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을 뒤흔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우리는 훗날 2009년 이후를 금융시장 역사에서 ‘A.C(After Crisis)’로 이름붙이고 이전을 ‘B.C(Before Crisis)’로 부를지 모른다.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를 겪은 뒤 경제이론이나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은 바뀌기 마련이다. 또 여러 국가의 명운도 엇갈릴 것이다. 한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강자로 부상할 동북아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이 상 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