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차로 서면질의서를 보낸 것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성실하고 진실하게 답변했더라면 검찰의 수사에 도움을 주고, 이른 시간 안에 조사를 끝내 피의자로서의 불편과 심적 고통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의 법적 권리를 내세워 검찰의 선의(善意)를 옳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헌법 및 형사소송법상 모든 피의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진술거부권이 있다. 범죄 혐의가 무거운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이 권리를 박탈당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 측의 염치없는 ‘장외(場外) 변론’을 지켜본 국민은 알맹이 없는 서면 답변서에 허탈감이 크다.
노 전 대통령의 답변 태도는 그가 유난히 도덕성과 청렴성을 내세웠던 사람이어서 더욱 실망스럽다. 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보낸 100만 달러를 청와대 구내에서 전달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돈의 성격에 대해 “집(부인 권양숙 씨)에서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서면조사에서 용처를 밝히길 거부했다. 피의자의 권리라며 묵비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에게 이 돈을 주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용처를 밝힐 경우 ‘나는 몰랐다’는 주장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인가.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명예 실추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엄청난 배신감과 수치심, 자괴감을 안겨줬다. 피의자의 권리를 빌려 형사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비뚤어진 법의식으로 끊임없이 법질서를 교란하더니 이제는 법률지식을 이용해 궁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솔직하게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검찰은 법적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나중에 논의하더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에서 어떤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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