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私立때리기’ 그만 할 때 됐다

  • 입력 2009년 4월 30일 20시 59분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초에 ‘윤증현 식’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큰일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이회창 총재 시절 왜 대선에서 두 번이나 졌느냐. 서민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영리병원제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 이사장이 말하는 ‘서민’이란 영리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일 터이다. 상위 5%에 불과한 부자나 갈 수 있는 영리병원을 허용했을 때 못 가는 서민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는 뜻일 게다. 더욱이 실력파 의사들은 영리병원으로 몰리는데 건강보험 환자는 안 받는다면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아니겠느냐는 거다.

사립은 나쁘다는 노무현 정부

그러나 정 이사장이 말하는 그런 영리병원은 실제론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 윤 장관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분을 영리병원이 맡도록 하자고 말한다. 실력파 의사들이 영리병원으로 우르르 몰려갈 리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그럼 서민들이 좋아할 일만 하면 문제없이 잘되는 건가. 노무현 정부 때 서민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강남 때리기’ ‘사교육 단속하기’ ‘사립학교 죽이기’가 줄기차게 시도됐다. 강남 지역을 중과세했지만 부동산 거래가 끊기고 불경기만 초래했지, 서민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사교육을 없앤다며 내신비중을 높이고 학원 단속을 폈지만 저녁마다 학원으로 가는 서민들 아이만 늘었고 그 부모는 허리가 휘었다.

지난 정권이 강행한 사립학교법 개정은 서민들이 좋아했을까. 일부 사학의 비리를 핑계로 개방형이사제도라는 편법을 써서 사학 운영을 좌지우지하려던 사학법은 좌파 정권 코드 사람들로 사립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와 연결돼 있다. 교육 의료 복지와 같이 숭고한 사명이 요구되는 분야는 ‘사립’보다는 ‘국공립’이어야 한다는 독선도 깔려 있다.

어제 검찰 조사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도덕적이고 깨끗한 척했다. 노 정부는 ‘사립은 나쁘고 돈만 챙긴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끊임없이 주입하려 했다. 그래서 공기업 민영화도 백지화시킨 것이리라.

학교도 병원도 복지단체도 국공립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립 없이는 굴러갈 수가 없다. 대한제국 말부터 신문화(新文化)와 교육을 도입해 배출한 인재도 사립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사립학교를 세우려고 하면 반대가 나온다. 지난해 말 은평뉴타운에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를 설립하려 하자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은 “하나은행에 대한 특혜 조치”라며 극력 반대했다. 나랏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학교를 세우겠다는데 시대착오적인 특혜론을 들이댔다.

공립만으론 위험하고 부족

이명박 정부는 노 정부 때의 행태를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구태 회귀 같다. 공교육부터 정상화해 사교육비를 줄이려 하지 않고 사교육 시장을 규제하려는 발상부터 하는 것도 그렇다. 과거 사교육 단속의 결과로 공교육이 정상화됐던 적은 없다.

위정자들은 교육과 보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자못 애국 충정을 과시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위험한 요소도 있다. 자칫하면 사립과 영리는 안 된다는 식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제대로 못하게 되면 사립과 영리를 때리고 책임을 떠넘긴다. 사립의 자율성을 뺏고 공립화하는 폐해도 나온다. 노 정부에서 경험했던 바다. 지금도 노 정부의 독선은 계속되는 것 같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새 정책은 작동할 줄을 모른다. 사립을 매도하던 대통령은 갔으나 그가 박은 대못은 아직 빠지지 않았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