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회’는 평화헌법 9조를 지키자는 모임이다. ‘일본의 전력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 전문 9조를 지키기 위해 2004년 발족했다. 발기인으로 한국에서는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유명하지만, 그와 함께 9조회를 결성한 멤버들은 2007년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 2008년 평론가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등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이들이 한 명씩 질 때마다 일본은 추모의 물결로 뒤덮인다.
9조회가 거창한 활동을 벌이는 건 아니다. ‘과학자 9조회’, ‘세무사 9조회’ 등 직역별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동네를 걷다 보면 게시판 구석에 ‘주말에 ○○구 9조회 걷기 대회 합니다’ 같은 작은 선전지가 붙어 있거나, 수십 명이 모여 1년간 애쓴 끝에 책을 한 권 정리해 내고 작은 음악회나 시 낭송회를 열었다는 등 그야말로 ‘뉴스’가 되지 않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을 통해 ‘9조’란 단순한 헌법 조항이 아니라 이들의 세상에 대한 믿음이자 희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9조라는 말이 일본인들의 귀에 울리는 독특한 감성은 참 말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는 TV에서 흘러간 가수의 환갑 기념 콘서트를 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사와다 겐지(澤田硏二)라는 이 가수는 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1970, 80년대를 풍미하던 그는 야한 화장에 퇴폐적인 분위기마저 풍겨 본명보다 ‘주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북한에서 김현희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던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씨가 매일 흥얼거렸다는 게 바로 ‘주리’의 노래였다. 다구치 씨 가족은 3월 부산에서 김 씨를 만났을 때 그의 CD를 선물로 건넸다.
이제는 배도 나오고 주름살이 늘어난 그가 직접 작사했다는 노래는 ‘나의 규조(窮狀·어려움, 고통)’라는 제목이다. “슬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 현명치 않아. 영령의 눈물 대신 부여받은 보물이야. 이 ‘규조’ 구하기 위해 목소리 없는 목소리여 모여라.” 9조도 일본어로는 ‘규조’로 같은 발음.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토대 명예교수가 숱한 취재요청을 내치면서도 올 초 동아일보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그가 ‘9조회 과학자모임’의 발기인이란 점과 무관치 않다. 그는 기자 앞에 앉자마자 한국에 대한 나름의 부채감을 말했고, 이후로도 공개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의 소중함과 전쟁의 참상”을 반드시 언급하고 있다.
3일은 일본에서 평화헌법이 시행된 지 62주년 되는 날이다. 때맞춰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4%의 일본인이 9조 개정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오르락내리락 할지언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무시 못할 다수’의 반대자가 늘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그간 일본의 개헌을 향한 움직임을 주시했던 도쿄특파원으로서, 더 많은 일본인이 평화헌법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좀 더 조명을 비춰야 했다는 부채감이 고개를 든다.
서영아 도쿄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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