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청사로 돌아온 홍 청장은 김문환 기업금융과장을 불러 “관련 기관에 가서 직접 지원 신청 서류를 작성해 보고 느낀 점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 과장은 곧장 ‘소상공인정책자금 지원’ 서류를 작성하러 소상공인지원센터로 달려갔다. 금요일 오후였다.
월요일 아침. 상기된 표정의 김 과장이 청장실로 들어갔다. 김 과장은 “개인사업자나 법인사업자가 정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소상공인지원센터뿐 아니라 지역 신용보증재단과 은행을 방문해 각종 서류를 떼거나 제출해야 한다”며 “신용보증재단에 내는 서류만 12∼15종류인데 이 가운데 10개는 은행에 내는 것과 같은 서류가 중복된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나마 서류의 상당수는 행정 정보망이나 금융 전산망 등을 활용하면 담당 공무원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주말 동안 해당 기관의 담당자들과 상의한 김 과장은 “개인사업자라면 현재 신용보증재단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12종류 가운데 2종류만 내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인사업자가 제출하는 서류 15종류도 6종류까지 줄일 수 있었다. 나머지는 민원인이 굳이 동사무소나 은행 등에서 발부받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중기청은 현재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와 간소화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중기청은 5월 한 달을 ‘정책 체험의 달’로 정하고 국·과장급 직원이 민원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중기청 간부는 앞으로 각종 서류를 직접 작성해 보거나 소상공인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할 예정이다. 또 ‘체험 성과 평가회’를 통해 복잡한 민원 절차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교육 과정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화제가 됐던 이른바 ‘규제 전봇대’가 떠오른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행정 전반에는 여전히 전봇대가 넘친다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의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민원인이 어려움을 겪는 까다로운 신청 절차도 전봇대 가운데 하나다. 그것도 행정 담당자가 마음만 먹으면 가장 쉽게 뽑을 수 있는…. 이번에 중기청이 보여준 ‘역지사지(易地思之)’ 행정의 지혜가 다른 행정기관에도 확산됐으면 한다.
주성원 산업부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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