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병우]한식 위한 술 그릇 예법 만들자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한식 세계화에 관한 포럼이나 세미나에서 대학 교수나 정부 관계자가 많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선 쌍수 들고 환영하고 싶다. 지금까지 외국 요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한식이 이젠 어깨를 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식의 세계화를 논하기 전 서양음식과 비교해 한식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은 상대적으로 찬 음식이 발전한 반면 한식은 더운 음식이다. 한식은 자극적이며 복합적인 맛을 추구하는 반면 양식은 단순한 맛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다. 한식은 국물 요리가 많은 대신 양식은 그렇지 않다. 상차림도 다르다. 우리는 모든 요리를 한 상에 차려 놓고 한 번에 먹는 반면, 서양은 적어도 두세 차례는 나눠 먹는다. 이런 차이가 글로벌 식문화의 큰 흐름을 타기 위해 한식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주방장이라 그런지 주방장의 역할을 먼저 논의하고 싶다. 세계화의 주된 역할은 정부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며 메뉴를 만드는 주방장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처음 식도락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파리에서 일할 때만 해도 생선을 날로 먹는 모습은 야만인의 식생활이라 간주했다. 포크와 나이프에 길들여진 서구인에게 오늘날 초밥과 생선회는 젓가락 문화를 배우게 했다. 일본의 경제력이 뒷받침했지만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열정적인 일본인 주방장의 역할이 컸다. 얼마 전 영국의 잡지가 세계 50대 베스트 레스토랑을 발표했는데 31위에 선정된 ‘쌈 바’의 한국계 요리사 데이비드 장과 같은 주방장의 등장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식에 대한 열정과 식문화 패턴을 이해하며 한식을 세계적인 요리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창의적 감각을 겸비한 주방장이 필요하다.

한국적 식문화 개발 서둘러야

식문화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분야가 술, 그릇, 인테리어이다. 술은 요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프랑스의 와인 산업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요리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요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사케(청주)처럼 한식과 곁들일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 육류 또는 생선과 어울리는, 후식과 함께 마실 수 있는 한국적인 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요리에서는 시각적인 표현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한식의 아름다움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유기나 백자처럼 한국적인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의 그릇 개발이야말로 한식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 줄 것이다. 손님이 식당에 들어설 때 모던하지만 한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실내 인테리어, 집기, 비품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마 전 특급호텔 내 한식당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외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 내 한식당의 폐쇄는 한 사람의 외국인에게라도 한식을 선보임으로써 한식의 우수성을 알려야 하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안타깝다. 한 번에 수백 명씩 식사를 하는 대형 식당에서 한식의 진정한 맛과 정서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갈비나 불고기가 한식 메뉴에서 외국인이 선호하는 요리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요리의 전부는 아니다. 호텔 내 한식당의 운영은 이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식의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저급한 한식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켜 나가는 일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세제상의 배려 등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

먹는 일을 한자로 식사(食事)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우리는 지금까지 식사를 음식 먹는 단순한 행위로 생각했지 문화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젠 식사가 아닌 식문화로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의 전환 없이 어떻게 한식이 세계적인 요리가 될 수 있겠는가? 요리를 단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식사로 여기는 인식으로는 한식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요리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하며 동시대적인 패션 감각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오감 만족시켜야 세계화

가장 아름다운 맛을 내는 맛의 조합, 혀에 전달되는 이상적 식감, 요리를 담는 그릇과 요리의 관계, 색채의 조화, 계절적인 요소의 반영. 요리는 단순히 조리과정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라 주방장의 오감을 총동원해야 하는 창조적 작업이다. 그래서 요리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술품을 감상하듯 음식을 대하고 관객으로서 요리를 음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서양 요리가 처음부터 지금 같은 고품격과 예술적 경지에 이를 만큼 발전하지는 않았다. 서양 요리도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식사 예법과 다양한 형태의 식기 및 메뉴를 갖추지 않았다.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조금 늦었지만 정체성을 살린 식사예법 등 식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란 거대 자본을 투자한다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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