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원주]세계관광기구 총장선거 낙선, 미래를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8일 오전 3시경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에는 한밤중인데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공사 임직원 50여 명은 이날 아프리카 중서부 말리공화국에서 열린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 선거결과를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국제전화를 통해 선거결과가 전해지자 관광공사 안은 허탈하고 무거운 공기에 휩싸였다. 기대를 걸었던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60)이 요르단 출신 탈레브 리파이 현 UNWTO 사무차장에게 졌다는 소식이었다.

오 사장은 10표, 리파이 사무차장은 20표. 겉으로 나타난 숫자만 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표차였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차이가 벌어진 10표가 아니라 오 사장이 얻어낸 10표다.

리파이 당선자는 현직 사무차장이고 회의가 그의 ‘홈 무대’에서 열렸다는 결정적인 ‘프리미엄’을 안고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오 사장의 배경은 불리함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그는 올해 2월까지 8년간 단 한 번도 외국인 입국자가 한국인 출국자보다 많은 적이 없는 ‘관광산업 후진국’ 출신이다. 그나마 10표라도 얻은 것은 오 사장을 비롯한 관광공사 임직원들과 우리 정부가 열심히 뛴 데 따른 결과다.

우선 오 사장은 지난 7개월간 27개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했다. 외교통상부는 각국 한국대사관을 적극 활용해 오 사장이 방문하는 국가마다 유력 인사를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유세 전략 수립에 힘을 보탰다.

관광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함께 배려한 공약도 폭넓은 호감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오 사장은 각국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관광 진흥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UNWTO 회원국의 민원을 빠른 시간에 처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 결과 유세 막바지에는 유럽 선진국과 제3세계 집행이사국들이 오 사장에게 호감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흘린 땀이 많았던 만큼 허탈감 또한 클 것이다. 누구보다 귀국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오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패배의 충격에 오래 빠져 있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번 기회를 위해서라도 오 사장이 서둘러 해야 할 일이 많다. 오 사장은 올해 가진 몇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비위생적인 관광지 시설 문제와 쾌적하지 못한 교통수단 등 우리 관광인프라의 문제점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해 왔다. 우리가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면 10표의 벽을 넘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원주 산업부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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