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이야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 공영방송의 상황이 딱해서다. 한국은 1980년대 초부터 KBS와 MBC, EBS 중심의 공영방송체제를 운영했다. 6월 격돌이 예견되는 미디어 관계법 처리의 혼란상이 보여주듯이 우리의 공영방송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지난 30년, 여섯 차례나 정권을 바꾸며 공영제도를 다듬었으나 제도가 성숙해 한국형 모델을 완성하기는커녕 정권 교체기마다 존립을 흔드는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이번에는 전반적인 미디어관계법 개정과 맞물려 혼란상이 더 심각한 모습이다.
한국 공영방송이 BBC나 NHK처럼 안정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도적으로 고정된 정치권의 경영개입체제이다. 공영방송사의 경영주체는 이사회다. 한국 방송규정에는 방송사 9명 이사진의 임명권을 집권당과 야당이 6 대 3으로 나눠 행사하게 돼 있다. 집권당 몫의 절반인 3명의 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 가운데 이사장이 나오니 이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셈이다. 공영방송을 대통령과 집권당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는 결과를 낳는다. 이 제도를 통해 정치권은 자리를 원하는 방송인과 지식인을 줄 세우고, 현장 방송인은 더 나은 자리를 위해 정치지향성을 키워야 하는 현실이다.
지배구조가 이렇게 돌아가자 대항세력으로 방송사 노조가 등장했다. 노조는 이런 구조에서 권력의 영향력 행사를 저지하는 안티세력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주로 사장이나 이사진의 임명 과정에 의견을 내고 정치권의 프로그램 개입에 저항하는 세력을 자임한다. 방송노조는 과거 수차례 KBS와 MBC 사장 선임을 저지했고, 방송법 개정에도 적극적인 발언권을 행사해 왔다.
문제는 정부나 노동조합 어느 쪽도 진정으로 시청자를 위해 힘을 쓰지 않는 데 있다. 공익을 빌미로 각자의 이권을 추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도는 시청자를 위한 공영이지만 노조 쪽에서 보면 어용이고, 정부 쪽에서 보면 노영방송인 한국적 현실이 계속된다. 현재 진행되는 미디어관계법 논의도 이 노정 대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지배구조는 또 프로그램의 정치편향성을 낳는다. 시청자는 정권이 바뀌고 방송사 임원이 교체되면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의 좌편향과 우편향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미국 NBC방송의 앵커였던 존 챈슬러 씨는 “나는 극단적인 중도파(extreme centrist)”라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표현했다. 기자는 그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후쿠치 회장 말과 다르지 않다. 한국 방송 현실에서 이런 철학으로는 책임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6월이 지나면 이번에는 제대로 시청자만을 위해 봉사하는 공영방송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법률개정 논의에서 시청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건가.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언론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