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은아]‘車-IT 융합’ 성공하려면 대기업 협력문화를

  • 입력 2009년 5월 15일 03시 18분


“차량 반도체는 가솔린 엔진과 똑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고위 임원이 한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차량 반도체가 자동차산업의 미래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보는 곳은 도요타뿐만이 아니다. 유럽계 자동차회사들도 자체 연구개발이나 제휴를 통해 차량 반도체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는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차량 반도체를 공동개발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유럽과 일본 자동차 및 전자업계의 발 빠른 행보를 감안할 때 우리 업계와 정부가 뒤늦게라도 힘을 모아 차량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본보 5월 14일자 A1면 참조
삼성전자 -현대기아車 ‘IT 자동차’ 손잡는다

산업계도 이번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 때문에 이번 협상이 좌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가 과거 차량 반도체 개발에 대한 논의를 하다 실패한 전례를 거론하는 이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집단은 수직계열화의 전통이 강하다. 특정 기업에 필요한 부품이나 소재가 있으면 가급적 계열사 안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룹에 대한 경계심이나 경쟁심리도 강하다. 핵심 성장동력 분야에서 주요 대기업집단끼리 손을 잡은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삼성LED와 현대모비스가 자동차 헤드램프용 발광다이오드(LED)와 모듈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지만 부품 계열사 수준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물론 수직계열화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수직계열화 덕분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빠른 속도로 고속성장을 했다. 하지만 기술이나 제품이 무차별적으로 ‘융합’되면서 한 대기업집단이 성장에 필요한 기술이나 자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과거 앙숙이었던 라이벌 기업들이 제휴를 하거나 심지어 통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실 국내 기업들도 해외 기업들과는 비교적 쉽게 손을 잡는 편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최대 라이벌인 일본 신닛테쓰(新日鐵)와 긴밀한 자본 및 기술협력 관계를 유지해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소니도 마찬가지다. 유독 국내 대기업들끼리만 제휴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물꼬를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솔선해서 터주기를 기대한다.

조은아 산업부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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