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오바마를 믿고 싶다

  • 입력 2009년 5월 15일 20시 02분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4월 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 성(城)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핵무기 없는 세계(World without nuclear weapons)’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핵 없는 세계를 위해 행동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어려운 고백까지 했다. 3만 명의 청중은 미국 대통령의 약속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선각자들이 꿈꿔 온 ‘핵 없는 세계’

‘핵 없는 세계’는 달성 가능한 목표인가, 아니면 이상주의자들의 꿈에 불과할까. 오바마도 “핵 없는 세계는 쉽게 이룰 수 없는 목표이고 어쩌면 내 생애에 달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힘겨운 과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때문에 핵 위협의 최전선에 서게 된 우리에게 ‘오바마 비전’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목표로 다가온다.

많은 선각자가 핵 없는 세계를 위해 오래전부터 투쟁해왔다. 오바마의 연설은 비핵(非核) 반핵(反核)운동의 선구자 조지프 로트블랫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적 반핵 평화단체 퍼그워시회의(Pugwash Conference)를 공동 설립한 로트블랫을 2001년 4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당시 93세의 할아버지는 젊은 기자에게 직접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대접한 뒤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한 자신의 인생역정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퍼그워시회의는 1957년 로트블랫을 비롯한 저명한 핵물리학자 22명이 설립했다. 정식 명칭은 ‘과학과 세계현안에 관한 퍼그워시회의’로, 퍼그워시는 핵무기 철폐에 관한 첫 회의를 열었던 캐나다의 작은 어촌 이름이다. 1955년 버트런드 러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로트블랫 등이 ‘평화선언문’을 선포한 것이 단체 결성의 계기가 됐다. 로트블랫은 1940년대 미국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 반핵운동에 투신해 반세기 가까이 매진한 공로로 199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가로막는 가장 골치 아픈 훼방꾼은 북한이다.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문턱에서 방향을 돌려 2차 핵실험을 예고하고 나섰다. 6자회담은 북한의 일방적 불참 선언으로 사망 위기에 몰렸다. 이대로 방치하면 북한은 머지않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핵보유국이 된다.

북핵은 핵 없는 세계라는 큰 목표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북핵을 제거하지 못하면 이란 시리아 등에서 꿈틀거리는 핵 개발 도미노를 차단할 수 없다. 세계 속에서 강대국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개입하고도 북한의 핵무장 야욕을 막지 못한다면 어느 나라가 지구촌을 핵 위협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 오바마가 핵 없는 세계라는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6자회담의 정상화다. 북한의 6자회담 죽이기 전술에 당하면 오바마의 프라하 연설은 공허한 수사(修辭)가 되고 만다.

오바마 비전, 북핵에 적용해야

1963년부터 퍼그워시회의가 강력하게 주장한 핵실험금지는 33년이 흐른 1996년이 되어서야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으로 결실을 봤다. 6자회담이 때때로 흔들리는 건 불가피한 과정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2005년 8월 31일 로트블랫의 사망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을 때 북핵 수용 불가를 확고한 신념으로 갖게 해준 마음속의 스승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명복을 빌었다.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고 나선 오바마도 반핵·비핵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작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의 약속을 믿고 싶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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