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議員, 보스 아닌 국민 눈치를

  • 입력 2009년 5월 18일 02시 58분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라는 것이 있다. 일을 시키는 자를 주인, 일하는 자를 대리인이라고 했을 때 대리인이 주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할 때 주인의 이익보다는 대리인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해 주인에게 충분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장 몰래 게으름을 피우는 직원, 사리사욕만 챙기는 공무원, 노조원의 권익보다는 자기의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한 노동귀족, 주주의 이익은 뒷전에 제쳐둔 전문경영인 등이 대리인 문제의 예이다.

공천제도 구조적 문제 때문

대리인 문제는 두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다. 주인과 대리인 간 이해관계의 불일치성, 정보의 비대칭성이 그것이다. 만일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대리인의 자기이익 추구 행위는 주인의 이익 또한 증진시킬 것이다. 그러나 주인과 대리인은 엄연히 서로 다른 개체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한,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주인은 대리인의 업무와 행동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주가 경영의 세부사항에 대해 잘 알기도 어렵거니와, 전문경영인이 내리는 결정이 어떤 배경과 동기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속속들이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대리인이 과연 충성심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지를 100% 확인하는 것은 어지간한 감독 비용을 추가로 지출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주인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대리인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최소한의 감독비용으로 대리인의 행태에 대한 정보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문제를 우리나라 정치에 대입해보자. 국회의원은 입법과 예산, 그리고 행정부에 대한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권한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국민의 대표다. 민주주의 의회제도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고 국회의원은 대리인이다. 여기에서도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하다. 당 지도부나 계파 수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천제도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1차 관문은 당에서 공천을 따는 일이다. 1차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2차 관문인 선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싶은 사람은 1차 관문의 통과에 사활을 걸게 되고, 공천의 칼자루를 쥔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 더욱이 많은 지역구에서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따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니, 국민의 심판보다는 공천권자의 낙점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국민과 국회의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국민은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기를 원하지만, 국회의원은 공천권을 가진 자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된다. 국민보다는 당 지도부나 계파 수장이 오히려 주인이 되어버렸다.

후보 예비경선제 도입해야

그래서일까. 똑똑하고, 점잖고, 교양 있고, 합리적이고, 학력과 경력이 나무랄 데 없는 국회의원들도 당의 지시라면 꼼짝도 못한 채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고 몸싸움이 어지러운 국회 활극의 주인공이 되고, 또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파 싸움에만 전력투구를 하는가 보다.

현재의 공천제도는 주인인 국민과 대리인인 국회의원들 사이에 이해관계의 불일치성을 낳는 주범이다. 17대 선거에서는 시늉이라도 내려고 했던 예비경선제도가 18대 선거를 위한 공천 과정에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의 제도적 퇴보가 아닐 수 없다. 국민과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각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최진우 한양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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