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금동근]‘할인 장터’ 구태 못벗은 서울국제도서전

  • 입력 2009년 5월 18일 02시 58분


13∼17일 열린 2009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보기 위해 개막일과 폐막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전시장을 찾았다.

국내 출판계 사람들 사이로 올해 주빈국인 일본을 비롯한 외국 출판사 관계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출판권과 저작권 거래가 주요 목적인 ‘국제도서전’에서 이들은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자녀들의 손을 이끌거나 유모차를 끌고 전시장을 누비는 주부들이었다. 할인 폭이 큰 어린이책을 찾아다니는 주부들에게 주빈국 행사나 고서(古書) 특별전 등은 관심 밖이었다.

이들의 뒤를 쫓아가본 어린이책 전시관은 ‘도서 전시회’가 아니었다. ‘신간 30%까지 할인’ ‘최대 70% 할인’ ‘세트 구입 시 택배비 무료’ 같은 선전 문구가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스피커를 이용해 호객 행위를 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한마디로 ‘장터’였다.

성인 도서를 전시하는 부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정은 비슷했다. 출판사마다 할인 판매는 기본이고, ‘헌책 균일가 판매’ ‘수입 도서 특별 할인’ 등으로 손님 유치 경쟁을 벌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책 장터처럼 운영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로 이미 15회째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도서전에서 만난 한 출판사 관계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마지막 날 일반에 책을 판매하지만 주요 목적은 저작권 거래고,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일반인 관람을 아예 제한한다”면서 “주최 측이 올해는 저작권 거래 활성화에 초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저작권 미팅은 닷새 동안 한 번밖에 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올해 도서전은 설상가상으로 대형 출판사들이 대거 불참해 더욱 빛이 바랬다. 민음사, 한길사, 창비, 시공사 등이 불경기를 이유로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 출판사는 책 장터처럼 진행되는 현실을 불참 사유로 꼽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의 한 원로는 “그건 핑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도서전을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지난해 교과서, 전집류를 내는 출판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단행본 출판사들과 갈등을 빚었고, 이런 내부 갈등이 도서전 파행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출협의 자체 능력으로는 이런 난맥상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서전을 정상화하려면 전문가들 위주의 한시적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언제쯤이면 명실상부한 ‘국제도서전’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금동근 문화부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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