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이런 고유동성 시대에 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보다는 기업으로, 또한 증시로 몰리는 편이 나라 경제에 몇 배 더 낫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비록 투기적 기운이 조금 끼여있기는 해도 주식이나 채권시장으로 몰린 돈은 기업의 투자 재원과 신용을 보강해주고 기업 경영에 활력을 줘 결국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기왕에 풀려 있는 돈을 촉매로 해서 향후 지구촌 경제가 불황의 늪을 벗어나려면 다음 몇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돼야 할 것이다. 첫째는 아직도 상당 부분 남아 있는 미국의 금융부실이 깨끗이 정리돼야 하고, 둘째는 기존에 풀린 막대한 글로벌 통화자금이 무리 없이 각국 중앙은행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세계 각국이 에너지를 더 적게 소모하는 성장패턴으로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3가지 조건은 따지고 보면 긴밀한 역학관계로 얽혀 있다. 미국의 금융부실이 제대로 청소돼야 세계 곳곳에 달러가 잘 돌 것이며, 그래야 금융시장의 불필요한 긴장이 줄어 실물경제에 힘이 더 실리고 신기술 산업투자도 더욱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먼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향후 신흥국 중심의 성장시대에 지구촌이 물가상승 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적게 쓰는 기술이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 또 금융안정과 경기회복으로 석유소비가 늘고 유가가 완만하게 올라야 사람들이 화석원료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커지고 결국 세계 에너지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돈의 힘으로 위기의 제1막이 잘 마무리되는 듯하다. 시중에 돈이 갑자기 넘쳐나면서 사고 싶던 우량주식과 쓸 만한 채권은 바닥나고, 각국의 신용스프레드가 하락하고 단기외채 비중이 떨어지는 등 온통 ‘돈의 플러스 효과’가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뛰어넘어 돈과 실물이 좀 더 가까워지려면 이미 풀려 있는 돈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시장의 긍정적 현상들이 선순환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폭넓게 싱싱한 돈이 돌도록 하려면 실물 쪽에서 더 튼실한 얘기들이 나와줘야 한다. 돈을 무한정 더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금융은 꽃이고 실물은 열매다. 지금은 간신히 꽃이 필 뿐 열매가 맺히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 이런 가운데 장기적으로 글로벌 유동성의 투자대상인 동시에 물가상승을 억제할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