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담배 한 개비는 피우고 갔어야 했는데…,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냐고…."
노 전 대통령이 찾았다는 마지막 담배 한 개비 얘기가 평범한 남성들과 애연가들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참았던 눈물도 '노무현과 담배' 얘기만 나오면 또 다시 흘러내린다고 호소하는 이도 있고, 십수 년 만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사서 피웠다는 누리꾼도 있다.
분향소에서 유시민 전 장관이나 가수 유희열 씨가 담배에 불을 붙여 향 대신 조문한 사실도 인터넷에 유포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전국의 분양소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담배 한 개비를 고인을 위해 건넬 정도로 '담배 조문'은 이번 '국상'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 "그의 마지막 길에 담배 한 개비라도…"
봉하마을을 찾은 직장인 이정훈 씨(40)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는 부엉이 바위에 올라 담배 한 개비를 남기고 왔다"면서 "마지막 가는 길에 그가 담배 한 개비라도 피우는 사치를 누렸더라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조문객들이 국화꽃 대신 라이터와 담배 한 갑을 놓고 오는 모습이 곧잘 목격됐다. 아예 담배에 불을 붙여 제기 위에 놓고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3층 복도에 설치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담배를 올린 한 학생은 "가시기 전 담배 한대를 피우고 싶어 하셨다고 해 향 대신 담배를 올렸다"고 말했다. 영정 앞에 사탕 등 담배 대용품을 올려놓은 학생도 있었다. 한 여학생은 "분향소에 담배가 너무 많아 저 세상에서 폐암 걸리시겠다 싶어 호올스를 대신 올려놨다"고 말했다.
서거 3일째를 맞이하는 25일에도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지금 내가 피우는 담배는 노 전 대통령이 못 피우고 가신 담배"라고 얘기하며 서로 울컥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감정의 공유는 담배라는 기호품이 갖는 일상성과 함께 자살로 드러난 실존적 고민을 담배가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직장인 김영훈 씨(35)는 "군대 시절 이후 담배는 절박한 심정과 동시에 짤막한 휴식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왔다"면서 "누군들 담배를 끊고 싶지 않겠느냐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수컷의 현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담배 한 개비라는 마지막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것이 '노무현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고 이는 쉽게 담배를 끊지 못하는 평범한 남성들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노무현 대통령과 담배의 끈질긴 인연
노 전 대통령은 대단한 애연가로 알려졌다. 많게는 하루 2갑 이상의 담배를 피울 때도 있었다는 것. 그가 주로 피웠던 담배는 서민 담배의 전형으로 알려진 '디스'였지만 꼭 한 가지 담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을 전후로 담배를 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곧잘 수포로 돌아갔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2006년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노 전 대통령이 '요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거의 끊었던 담배를 집권 하반기 무렵부터 다시 피웠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담배와 1회용 라이터가 비치됐던 청와대 집무실 사진이 최근 인터넷에 유포되자 일부 누리꾼들은 "담배, 라이터가 내 것과 같다"고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에 피우던 '디스'는 퇴임 후에는 비교적 순한 '클라우드 나인'으로 교체됐다. 현재 전국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에 클라우드 나인이 자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부터 노 전 대통령의 흡연은 '줄담배'로 변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기 직전에도 참여정부 인사 30여명과 담배 2개비를 피우며 착잡한 심경을 달랬고 검찰 출두 후에도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마음을 다듬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시인 서해성씨는 추모 시 '담배 한대 주소'에서 다음과 같은 시구로 그를 위로했다.
"(…)오늘은, 담배 한 대 비손하여 올리는 밤/담배 한 모금 없이 가는 저승길은 멀다네/오늘은, 담배 한 대 나눠 피우는 밤/불씨로 나눠 피우는 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