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캄보디아 곳곳에서는 일본이 주도하는 도로 건설사업이 진행됐다. 대부분의 공사는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지원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일부는 사업적 목적인 것도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캄보디아’ 하면 ‘킬링필드’와 ‘앙코르와트 관광’ 정도밖에 떠올리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와 비교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얼마나 빨랐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세계에 금융위기가 닥치고 나서 아세안 지역은 글로벌 기업들의 더 큰 주목을 받는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뭐 팔 게 있다고…’ 하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좀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 선진국 사람들과 달리 아세안의 출산 문화는 ‘풍요로움’을 지향한다. 선진국들이 대규모 직접투자를 하면서 소득 수준도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 아세안은 한국에도 중요한 경제 이웃으로 성큼 다가섰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직전인 2005년 274억 달러 규모였던 대(對)아세안 수출은 지난해 493억 달러로 늘어났다. 총 교역액은 902억 달러로, 아세안은 중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3번째로 큰 무역상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규모만 보면 미국을 앞지른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아세안 투자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50% 가까이 추락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한국의 전체 대외 투자가 27%가량 감소한 것을 감안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31일부터 이틀간 제주에서 열릴 ‘한-아세안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다. 이번 서밋은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약간 느슨해진 한-아세안 경제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 기업인들이 아세안 10개국 정상 및 아세안 기업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서 없애지 못할 기업 활동의 장애물은 없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세안과의 관계 구축에 늦게 나섰다고 이들을 따라잡지 말란 법도 없다. 한-아세안 FTA가 중국-아세안 FTA보다 체결은 늦었지만 훨씬 내실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좋은 증거다.
임우선 산업부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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