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外患보다 內憂가 더 걱정이다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8분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우리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틀 뒤인 25일 봉하마을 등 전국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던 그 순간에 북한은 2차 핵실험의 폭발음을 울렸다. 다음 날 평양체육관에서는 핵실험 성공을 경축하는 군중대회가 열렸다. 체육관을 뒤덮은 열렬한 박수 소리는 그들의 호전성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워치콘 2’ 상황서 떠난 盧전 대통령

대북(對北) 정보감시태세 ‘워치콘 2’가 발령된 긴박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어제 우리 곁을 영구히 떠났다. 그러나 북의 ‘핵개발 및 무력도발 위협’이라는 외환(外患)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정쟁 및 혼란 조짐’이라는 내우(內憂)가 머리를 무겁게 한다.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과 북의 핵실험은 인연이 깊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때는 현직 대통령이었다. 퇴임 직전인 2007년 10월엔 평양에서 김정일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10·4 공동선언’을 발표했으나 이번 핵실험은 이마저 휴지로 만들어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과 남북 군사적 긴장상태를 이명박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 보복을 위한 표적수사를 시켰고 대북 강경론을 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솔직히 나는 북으로부터의 ‘외환’보다 억지 논리가 횡행하는 ‘내우’가 더 걱정스럽다. 북의 도발에는 한미연합 군사력이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유언비어나 억지 주장은 지난해 광우병 소동 때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정치적 이념적 투쟁과 정권타도 운동으로는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다시 화두(話頭)로 떠오른 화해와 용서를 이룰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분열과 갈등의 세상, 국민이 선거로 선택한 정권을 시위로 타도하려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감성 에너지를 사회통합으로 승화시키는 이성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일각에서 나오는 ‘검찰 책임론’이나 ‘대통령 책임론’은 우리 사회를 더 경직시킬 우려가 크다. 대통령과 검찰에 응분의 책임을 강요할 만한 근거는 현재로선 없다고 본다. 책임을 물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인과(因果)관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단순히 ‘수사 중에 벌어진 일이니까’ ‘정부의 최고책임자니까’ 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정권과 검찰, 특정 신문들이 거짓 혐의사실을 흘리고 보도함으로써 죽음으로 몰았다는 주장은 억지다. 검찰은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신중한 조사 태도를 보였다. 검찰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 언론의 불필요한 경쟁과 오보 방지, 원활한 수사진행을 위해 하루 한두 차례씩 수사진행 상황을 브리핑한다. 검찰과 취재진의 오랜 관행이고 신사약속이다.

因果관계 없는 책임론은 무책임

검찰 소환조사 후 너무 오랫동안 법적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죽음을 재촉했다는 주장도 얼핏 그럴싸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박연차 씨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혐의사실을 부인해 증거 보강수사를 하던 중이었다는 검찰 설명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소환조사 후 20여 일간 검찰이 증거도 못 대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은 무책임한 비난이요 악의적 선동에 가깝다. 현직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구체적 혐의가 없는 데도 야당과 일부 세력이 탄핵 소추를 거론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제 헝클어진 마음을 추슬러 현실로 되돌아와야 할 때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략적 이념적으로 이용하며 반(反)정부 운동의 빌미로 삼고, 나아가 지나치게 미화(美化)해 영웅이나 순교자, 열사(烈士)로 만드는 일은 사후(死後)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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