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의 시점과 배경도 드라마틱하다. 1929년 8월 건립 계획을 발표할 무렵 최고치를 기록하던 주가는 공사 착수 때에는 곤두박질치면서 대공황으로 빠져들었고 1931년 완공 때는 사무실을 겨우 30% 채울 정도였다. 1933년에는 영화 ‘킹콩’의 무대가 되었고 1939년 이래 두 번이나 리메이크된 영화 ‘러브 어페어’의 해후 장소로 세계인의 기억에 각인되었다. 도시화의 현장에서 41년간 세계 최고층 기록을 지키다가 세계무역센터에 자리를 내주었고 2001년 9·11테러로 다시 뉴욕 시의 최고층 건물이 되었다. 한마디로 대공황의 절망을 딛고 국민적 자부심의 표상을 만들어낸 미국인의 희망 만들기가 현대판 불가사의를 창조한 것이다.
에너지 사용 38% 줄이는 大개조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21세기 신화 재창조의 길을 걷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세기 자국의 대공황 극복의 대표 프로젝트였던 뉴딜을 녹색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그린뉴딜(Green New Deal)로 되살려내고 있고, 그중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고 투 그린 빌딩 프로젝트(Go-To-Green Building Project)’가 상징성에서 스타급이다. 올해부터 5년간 추진될 총 5억 달러 규모의 사업에서 그린에너지 부문 예산은 1억 달러이다. 에너지 그린화의 목표는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38% 줄여서 연간 440만 달러를 절감하고 향후 15년간 이산화탄소 배출을 10만5000t 줄인다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의 내용으로는 6500개의 유리창 교체, 첨단 냉난방 시스템, 외벽 단열처리, 사람이 있을 때만 켜지는 최첨단 자동 조명조절 시스템 설치와 함께 에너지의 수요와 사용을 온라인 모니터링하고 절약하는 원격 건물감시 시스템 등이 들어 있다.
미국의 녹색뉴딜에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가 핵심사업으로 떠오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전체 전력소비에서 도시 상용빌딩이 71%를 차지하고 있고 뉴욕 시에서는 탄소의 79%가 상용빌딩에서 배출된다. 미국에는 지은 지 20년 넘은 건물이 464만 개가 있는데 이 중 4분의 3이 에너지 절약형이 아니라고 한다. 기후변화를 늦추려면 에너지 효율 향상에 최우선을 둬야 할 상황에서 에너지가 줄줄 새고 있는 숱한 빌딩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개축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 추진 체제의 특성이다. 프로젝트 파트너는 빌딩소유회사, 부동산 전문회사, 에너지 전문기업, 비영리 연구소 등으로 이루어진 컨소시엄이지만 이를 선도적으로 총괄 자문하는 기구는 비영리재단 ‘클린턴 기후구상(Clinton Climate Initiative)’이다. 시장기능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 전도사로 나선 인프라 개조의 사회사업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표준모델은 미국 내 ‘고 투 그린’ 사업의 급속한 시장 확대와 함께 국제협력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지능형 전력망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건물 부문의 전력 정보기술(IT)에서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이 생길 때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핵심요건은 기술 표준화와 시장 선점효과이다. 첨단기술의 선도적 표준화 작업에 동참하고 특허와 판매망을 선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서는 기술력이 우수하더라도 기회를 잡기 어렵다.
녹색기술 경쟁하며 협력해야
미국의 빌딩 ‘고 투 그린’ 사업에서 한미 양국 간 그린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면 선진기술과의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실리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녹색성장 이니셔티브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의 추진에 적극 동참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녹색시대 선진기술과 ‘경쟁하며 협력하는’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통합적 시각의 열린 사고와 부처 간, 부처 내 장벽을 뛰어넘는 민관 합동의 협업체제가 필수불가결이다.
김명자 객원논설위원·KAIST 초빙특훈교수 mjkim@gk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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