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은행. 터키인 A 씨(49)가 외환창구를 찾았다. 1000원짜리와 동전을 한 뭉치 창구에 올려놓고 “200유로로 환전해 달라”고 했다. 동전을 세느라 진땀을 뺀 직원이 200유로를 갖다 주자 A 씨는 깜빡했다는 듯 지갑에서 100유로짜리 몇 장을 꺼내 들고 능청을 피웠다. “500유로 고액권으로 바꿔주세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직원이 500유로를 내밀자 A 씨는 또 튕겼다. “일련번호 K로 시작하는 걸로 주세요.” 세상에 별 사람이 다 있다며 직원은 500유로화 돈다발을 갖고 왔다.
“나도 좀 봅시다.” A 씨는 자신이 원하는 지폐를 찾겠다며 직원이 들고 있던 돈뭉치를 살펴보는 척했다. A 씨는 눈 깜짝할 사이 500유로(약 90만 원)짜리 여섯 장, 우리 돈으로 540만 원가량의 돈을 잽싸게 빼돌렸다. 까다로운 외국인 손님에 정신없던 직원은 창구 업무를 마감할 때가 되어서야 돈이 비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일 “유로화를 환전하겠다며 은행 직원을 속인 뒤 돈을 훔친 터키인 A 씨와 S 씨(37) 등 두 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A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 성남시 분당 일대의 은행 창구에 소액권이나 동전을 들고 가 환전을 해달라며 직원을 정신없게 만든 뒤 빠른 손놀림으로 유로화를 훔쳤다. 경찰이 확인한 것만 6차례로 훔친 돈은 1만7000유로(약 3000만 원)에 달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경찰이 확인한 것 외에 5차례 더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