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어머니, 그 불편한 진실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지난주 한 행사에서 이름만 알고 있던 여성작가를 만났다. 그의 소설과 내 소설에 대한예의 바른 품평을 교환하고 최근 소설의 경향이라는 점잖은 화제를 지나 결혼은 했나 하는 일상적 화제에 이르렀을 때 그 작가가 미혼이다, 결혼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으나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자마자 다 자라고 덜 자란 아이 셋을 거느린 나는 기가 살았다. 그건 맞는 말이다, 애 하나 낳고 자라는 거 보면서 배우는 거, 그거 진짜 장난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학교도 교사도 없다, 잘난 척을 몹시 하며 자식을 기르는 일의 고통과 희열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몇 시간이라도 이어갈 수 있는 주제였지만 불행히도 상황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에 이르는 그 주변의 여성작가들 모두가 미혼이었던 것. 미진한 대로 입을 다무는 내게 한 작가가 말했다. 나는 솔직히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 일찌감치 엄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 고등학교 때 이후로 죽 엄마랑 따로 살았거든. 그 말을 기점으로 화제는 급반전을 이루어 엄마라는 사람들의 성격, 끝없는 잔소리, 지긋지긋함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전화를 걸잖아. 그리고 십 초 후 바로 후회하잖아. 한 작가의 말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했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기댈 언덕이고 휴식처이나 또한 짐이고 덫인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싶었던 영화 ‘마더’

그리고 어제, 영화 마더를 보았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으나 너 재미있다 하면 나도 내일 볼란다, 하신 어머니께 나는 보시지 말라, 문자를 넣었다. 고민도 없이 그렇게 했다. 영화는 너무 음침하고 너무 가혹하고 너무 불편했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남짓, 내내 나는 음, 으음, 으으음, 으으으으, 신음을 삼키다 기어이 아, 이 영화 너무하다, 소리를 내어 말하고야 말았다.

살인 혐의를 쓴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영화 속 어머니는 기실 모든 어머니의 한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아들의 위기, 아들이 맞닥뜨린 장애를 제거하는 해결사이므로. 영화의 상황은 그 어머니로 하여금 해결사 역할을 맡지 않을 수 없게끔 설정되어 있으며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아들에게 적대적이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엄마한테만, 엄마에게만 말해야 해, 엄마가 구해줄게, 하는 대사야말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집착과 사명과 의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모든 평범한 어머니에게는 이웃에게도, 가족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조차 알릴 수 없는,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내 아이의 비밀이 있는 법이므로. 사실 모든 어머니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있다.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게, 너는 그저 이 엄마만 믿어….

영화 속 어머니의 행보는 그러나, 일반적인 어머니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큰소리만 치는 그를 따라다니며 팔자에 없는 룸살롱에 동행하는 것, 탐정이 된 양 검은 비옷으로 몸을 가리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잠복하는 것까지야 이해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 이후, 아들의 무죄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 그 믿음이 불러낸 광기로 눈을 번득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섭고 심지어 끔찍하며 기어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 이르면 아예 눈을 감고 싶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이 풀려나고 그 아들이 건네준 침통, 살인의 증거품인 침통을 들고 관광을 떠나는 어머니는 버스 좌석에서 천천히 뚜껑을 연다. 자살하려나 봐. 같이 보던 남편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천만의 말씀, 그건 어머니라는 존재의 심층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남자만이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다. 내 짐작대로 어머니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허벅지 안쪽, 흉한 기억을 잊게 해주는 혈자리 깊숙한 곳에 침을 찔러 넣는다. 그러고는 버스 통로의 춤추는 무리들 사이로 끼어드는 거였다. 나쁜 기억, 흉한 일, 고통스러운 생각을 떨쳐내듯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누가 엄마를 광기로 내몰았나

이 영화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자식을 위해 어머니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과연 살인까지도 할 수 있는가, 하는 표면적인 문제부터 우리에게 어머니는 과연 무엇인가. 누가 우리의 어머니를, 우리의 여성들을 그토록 가혹하고도 무서운, 눈을 감고 싶은 광기에 휘말리도록 내모는가, 하는 사회학적 질문, 그리고 정말 내 어머니는 내게 누구인가, 나는 어떤 어머니인가, 하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까지.

모성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모든 개인사, 사회사의 문제를 감싸 안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머니의 내면, 그 안에 숨은 고통과 광기의 극단.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문장은 우리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 잠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는 불편함이 그렇듯이.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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