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몰락한 미 共和黨이 주는 메시지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미국 공화당의 별명은 GOP(Grand Old Party)다. 창당 6년 만인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하고, 다시 십수 년이 흐른 뒤 얻은 별칭이다. 처음에야 장중하고 전통 있는 당이란 뜻으로 새겨졌겠지만 요즘에는 낡았다는 느낌의 올드가 더 다가온다. 공화당의 심벌인 코끼리마저도 변화에 굼뜬 인상으로 겹쳐진다.

요즘 공화당의 행태가 볼만하다. 민심이 떠난 그 자리엔 당내 분란과 변절의 소식이 들려온다. 머리를 맞대고 세계정책을 다루던 딕 체니 전 부통령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공화당 사람이 아니다” “맞다” 하며 티격태격하고 있다. 5선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일까지 생겼다. 3무(無) 정당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힘(power)이 없고, 리더(leader)가 없고, 방향타(rudder)마저 없다는 비아냥거림이다.

죽을 쑤고 있는 공화당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배우 출신의 걸출한 스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0년대의 일이다. 공화당을 지탱해온 세 기둥이랄 수 있는 강한 방위력, 전통적 가치, 경제적 보수주의가 말 그대로 균형을 이루던 시기다. 스타워스라는 개념으로 냉전시대의 라이벌 소련을 압도했고, 감세와 자유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레이거노믹스로 엄청난 번영을 이뤄냈다. 레이건은 주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조곤조곤 말하며 지지기반을 넓혔다. 레이건 시대는 대공황 때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건져낸 불세출의 인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시대와 종종 비견된다.

레이건 이후 공화당의 치세는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의회에서도 강세였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40여 년 만에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됐다. 2006년 선거에서 민주당에 자리를 내줬지만 말이다. 공화당이 민심을 잃게 된 중심에는 아들 부시 대통령이 자리한다. 9·11테러 이후 성난 민심을 업고 등장한 그는 잘나갔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치고,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는 등 잇따라 실족했다. 기독교 원리주의적 성향의 그는 적과 우리를 갈랐다. 또 거짓말로 전쟁을 시작해 미국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면서 중도보수 성향의 지지층마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월가발 경제위기는 결정타였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공화당이 한 일은 없었다.

결국 공화당의 지지기반은 점점 골수분자로만 줄어갔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탈 속도는 가속화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원이라고 하는 사람은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공화당이 우세한 주는 5개 주뿐이고, 텃밭인 남부의 아성도 흔들린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아지고, 좀 더 도시화되고, 종교를 믿는 사람이 줄었는데도 백인과 시골, 기독교만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화당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한나라당의 행태를 떠올린다. 당내 분란 소식에 떨어지는 지지율, 방향타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들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10년 만에 되찾은 정권을 내놓게 될 것이다. 그나마 한나라당에 위안이 된다면 수권정당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듯한 민주당의 행태일 것이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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