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손상익]시사만화 100년… 도도한 풍자의 맥

  • 입력 2009년 6월 6일 02시 56분


6월 달력에는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왜 한민족(韓民族)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 많이 보인다. 현충일이 그렇고 6·25전쟁이 그렇다. 한국 신문시사만화가 탄생해 일제의 한반도 침략 기도에 맞선 지 꼭 10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날도 포함된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반도 침탈의 이빨을 드러내던 절정의 시기 1909년 6월 2일 민족계몽의 기치를 내건 선각자에 의해 ‘대한민보’가 창간됐다. 창간호 1면 한가운데 자리에 커다란 만평 하나가 실렸다. ‘삽화(揷畵)’란 제목의 그림은 턱시도 차림의 신사가 신문 창간 취지 4가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는데 그 속에 ‘한민족의 혼(魂)을 결집하고 아우른다(韓魂의 團聚)’는 민족자주단결권의 천명도 당당하게 표현했다.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일본제국주의를 ‘서양 흉내 내는 원숭이’로 비판하는가 하면, 일제가 국민단발령(國民斷髮令)을 발표해 상투를 강제로 자르려 하자 ‘아무런 명분도 없이 왜 잘라!’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런가 하면 나태해지는 우리 민족에게 회초리를 내리치면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다. 강압적인 한일병합 5일 전인 1910년 6월 24일자 만평에서는 한복을 입은 남자가 오른쪽 발목을 물어대는 개(犬)를 향해 기다란 회초리를 내리치며 ‘기른 개가 주인 발뒤꿈치를 문다’며 일본의 침략행위를 통렬하게 꾸짖었다. 한국 신문시사만화의 첫 출발은 이렇듯 민족의 앞날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을 때, 안으로는 깨어나라고 외쳤고 밖으로는 외세 일본을 향해 배은망덕한 침략 야욕을 꼿꼿한 기개로 질타했다. 대한민보는 국권 강탈 때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고 말았다.

동아일보 ‘고바우 영감’의 역할

신문시사만화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악랄한 ‘한민족 언로(言路) 말살’ 기도로 말미암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시사만화가 또다시 날카로운 풍자의 펜대를 벼리기 시작한 때는 1950년대 후반, 자유당 집권 말기의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954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4칸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은 광복 이후 한국 신문시사만화의 전형(典型)으로 뿌리를 내리는 데 큰 역할을 맡았다. 1958년 1월 23일자 만화에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는 변소의 똥 푸는 사람마저 귀하신 어른 대접 받는다’며 부패한 최고 정치권력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 때문에 고바우 만화 작가는 건국 이후 최초로 언론탄압을 받아 사법 처리되는 기록을 세웠다.

4·19혁명 이후 시사만화도 표현의 자유를 잠시 만끽하지만 군사쿠데타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계엄군의 서슬 퍼런 사전검열에 옴짝달싹 못하던 시절에도 시사만화만은 비교적 옹골찬 시대 비판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만화그림이 갖는 중의성(重意性), 그림과 글자의 행간(行間)에 담을 수 있는 다의적(多義的) 구조장치로 기사검열마저 교묘하게 피해나간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나름대로 묘안을 찾았던 셈이다.

‘고바우’ 등장 이후 한국의 일간종합신문에는 1칸짜리 만평과 사회면의 4칸짜리 시사만화를 필수항목처럼 편집하기 시작했다. 시사만화는 신문기사가 담을 수 없는 풍자의 해학과 신랄한 비판을 가능케 했다. 독자의 호응도 뜨거워 신문지면의 백미라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신문시사만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민주화 욕구에 당당하게 부응해 민의를 대변하는 중심자리에 설 수 있었다. 기사가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독자는 신문시사만화에서 읽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기반을 둔 쌍방향 미디어가 주목을 받는 시대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뉴미디어 열풍은 급기야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언론 환경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이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신문시사만화는 외형적으로 보기에 빛이 다소 바래는 듯하다. 일간신문의 지면에서 1칸 만평이나 4칸 시사만화의 모습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런 과도기적 현상은 신문시사만화의 일방적 패퇴가 아니라 새로운 시사풍자 패러다임의 정착이라는 시그널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신문시사만화가 맡아왔던 사회 파수꾼 기능을 누리꾼이 넘겨받아 도도한 맥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웹2.0 시대에 걸맞은 신문시사만화의 환골탈태라 보아야 옳다.

웹2.0시대 걸맞은 ‘소금’ 될 것

동북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주위 열강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분투(奮鬪)하지 않았던 영역이 있을까. 하지만 한국 신문시사만화야말로 독자의 웃음 속에 깃든 신랄한 풍자로 우리 한국사회가 변질되지 못하게끔 소금 역할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맥놀이는 오늘 이 시간에도 쿵쾅쿵쾅 우리 사회 전반에서 힘차게 박동하는 중이다. 시대가 바뀌고 역할이 바뀌고 형태가 바뀌지만 시사만화는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리라 믿는다.

손상익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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