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성공단 ‘돈독’ 오른 北에 휘둘릴 수 없다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북한이 작년부터 시도한 개성공단 흔들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북한은 어제 남북 접촉에서 현행 평균 75달러 수준인 개성공단 근로자의 월급을 300달러로 인상하고 이미 받아간 1600만 달러의 토지임대료를 5억 달러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신의를 내팽개친 일방적 계약 파기 행위다.

지난해 3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 근무하던 우리 당국자 11명 추방으로 시작된 개성공단 공세의 목적은 결국 돈이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현대아산 직원 A 씨를 붙잡아 75일째 억류하고 있다. 사람을 잡아놓고 터무니없는 액수의 몸값을 요구하는 인질범과 다를 게 없다.

북한은 지난달 21일 첫 접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A 씨 문제를 외면하면서 돈 얘기만 꺼냈다. 이것이 대남(對南)공세를 펼 때마다 ‘민족끼리’를 내세우던 북한의 진짜 모습이란 말인가. 우리 대표단은 A 씨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잘 있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개성공단은 이번 사태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8일 입주기업 가운데 한 곳이 처음으로 철수 결정을 내렸다. 올 들어 4월까지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총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1% 감소했고, 총생산액은 6.6% 줄었다. 우리 기업 상주인력도 최근 3개월간 43% 줄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임금을 중국 수준인 월 200달러로 올려달라고 하면 100여 개 입주기업 중 3곳, 150달러를 요구하면 30곳 정도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의 300달러 인상 요구에 굴복하면 우리 기업이 모두 보따리를 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기로 한 기업인은 경제적 피해와 함께 직원들의 신변위협을 이유로 꼽았다. 북이 A 씨를 석방하고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없으리라고 보장하지 않는 한 우리 기업과 직원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북이 계속 황당한 청구서만 들이미는 식이라면 남북 접촉의 의미가 없다. 북에 A 씨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개성공단에 관한 어떤 논의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19일 남북 접촉에서도 ‘A 씨 억류가 개성공단 문제의 본질’이라는 자세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서는 안 될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강력한 제재결의를 만들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금은 북이 달라는 대로 임금을 올려주고 토지임대료를 펑펑 집어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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