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노동운동 위해 ‘국가의 발’ 묶은 화물연대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가 11일부터 집단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화물연대는 “그동안 끝까지 인내하며 해고 조합원 원직 복귀, 운송료 삭감 중단,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탄압 중단, 화물연대 인정 등을 요구했지만 대한통운과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운송 거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물연대와 대한통운은 10일 저녁 △계약 해지된 38명의 원직 복귀를 보장하고 종전의 근무조건과 사업이 훼손되지 않도록 함 △회사는 이번 사태를 이유로 복귀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일절 하지 않음 △이번 사태를 이유로 제기한 일체의 민형사상 고소, 고발, 가처분신청, 소송을 합의 후 취하하는 데까지 합의했다.

막판에 협상이 결렬된 진짜 이유는 대한통운이 화물연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데 있다. ‘화물연대 인정’은 대한통운과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는 주체를 30여 명의 계약 해지자가 아닌 화물연대로 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은 계약 해지자들이 아니라 화물연대가 된다. 대한통운은 “이미 사내에 노조(한국노총 소속)가 있는데 사실상 또 하나의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부가 개인사업자로 분류한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물론 화물연대의 주장이 전적으로 무리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부는 “지역에 따라서는 화물연대 각 지부가 개별 회사와 계약을 하는 곳도 있다. 각 차주들의 연합체로서 대표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화물연대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를 수용하는 것도 대한통운의 자유라는 점이다. 따라서 대한통운은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거부한다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의 사안으로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며 집단운송 거부를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는 변두리 구멍가게의 영업중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차주들의 운송 거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피해는 국가와 국민 모두가 입게 된다. 이런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화물연대도 집단운송 거부를 내세워 정부와 회사에 자신들의 주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집단의 실체를 인정해달라는 것은 생존권과는 관계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화물연대는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했을 뿐 어떤 다른 의도나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근로자의 삶과 아무 관계가 없는 자신들의 노동운동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볼모로 잡는 행위를 순수하게 보기는 어렵다.

이진구 사회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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