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기 힘든 나라
‘1년 가구소득이 7200만 원이 넘는 상위 4% 고소득자 부모에게 자식은 행복을 보장한다. 중간소득자 부모에게 자식의 유무와 행복지수는 상관이 없다. 소득이 하위 44% 이하 가구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행복을 떨어뜨린다.’ 행복지수를 통계로 계산하는 작업을 하는 경제학자 조승헌 행복경제연구소장의 저서 ‘행복을 디자인하라’의 한 대목이다.
조 소장에 따르면 저소득 가정에선 자식이 있는 경우가 자식이 없는 경우보다 행복도가 떨어진다. 이를 돈으로 보상하려면 연간 976만 원을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에게는 통할 얘기지만 엄마에겐 그렇지 않다. 여자는 소득에 관계없이 자녀가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진다. 바꿔 말하면 여자는 돈 때문에 아이를 더 낳거나 덜 낳거나 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여자들이 자녀가 있으면 행복한 데도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뭘까.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모성(母性)이 너무 강해서라고 본다. 한국인의 모성을 연구한 한 학자는 “한국 엄마들 정서의 근원은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라고 말한다. 치열한 입시경쟁, 취업경쟁에 아이를 내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아예 아이를 낳지 않도록 만든다. 외국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문화가 있다면 아이 낳기를 이토록 꺼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의 삶은 엄마가 되면서 달라지긴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처럼 극적인 나라도 많지 않다. 육아와 교육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몫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면 “당신은 도대체 뭐 했냐”고 부부싸움이 생기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는 불안한 일자리,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 경쟁적 사회시스템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출산장려금과 보육시설 건립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이다.
여성 취업률 높여 출산율 높여야
움직일 수 없는 중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현재 20대 가임여성은 평균 두 자녀 가정에서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남편과 자식의 삶 뒤에 숨으려고 하지 않는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과 출산율의 관계를 보면 미국 덴마크 스웨덴 등 여성 경제활동이 활발한 나라가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한국이나 일본,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유럽보다 출산율이 훨씬 높다.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 출산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통념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제도와 관습이 여성에게 우호적인 나라는 여성에게 직장과 가정 중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부담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취업은 출산의 필수조건, 보육과 교육환경 개선이 충분조건이라 할 만하다. 아이 낳기 좋은 세상. 말이야 좋지만 출산을 위한 필수조건 충분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내 딸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도 말릴 생각이 별로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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