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훈]경제 못지않게 ‘정치 복원’ 급하다

  • 입력 2009년 6월 13일 02시 59분


많은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던 상황을 겪은 지 3주가 되어간다. 유례없는 충격의 여파 속에서 모두의 시선은 이제 서울광장에 쏠려 있다. 야당과 진보세력은 광장정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면 정부와 한나라당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 추이를 지켜본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의 5월과 6월은 충격과 고뇌 속을 통과 중이다. 우리의 시선이 광장에 쏠려 있는 사이에 수면 아래에서는 중대 변화와 새로운 고민거리가 꿈틀거린다. 이 변화를 면밀하게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만간 불의의 쓰나미를 만날 수도 있다.

첫 번째는 정치 목표를 둘러싼 정부와 시민의 거리가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벌어진다는 점이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 경제는 비교적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고 최근에는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경제소방수를 정권의 목표로 삼은 이명박 정부로서는 고무적인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경제의 흐름이 정부의 정치적 자산의 유지나 확대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경제를 강조하면 할수록 정치적 실패가 역설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는 필자의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정치와 경제의 병행 발전이 시민들의 궁극적인 바람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가벼이 여기고 있다. 어느 한쪽의 성과만으로 다른 부분의 실패가 용인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대중 정부는 출범 1년여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하는 성과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옷로비 사건’으로 임기 초반부터 가차 없는 비판을 받았다. 노련한 DJ도 이러한 비판을 쉽게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국민과 소통-눈높이 맞춰야

민주화를 통해 다져진 시민의식은 분명 병행 발전을 요구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경제 살리기라는 선거공약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유권자는 선거일에 747이라는 단순한 공약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바로 그날부터 달콤한 캠페인의 허니문은 막을 내렸다. 선거 이후의 통치과정은 차가운 현실이며 이를 무미건조한 경제지표만으로 떠받칠 수는 없다. 경제지표를 소통-눈높이 맞추기와 병행해야만 정부는 기대와 좌절로 점철될 5년의 임기를 헤쳐갈 수 있다.

두 번째는 대외 이슈와 국내정치의 분리 조짐에 있다. 얼마 전 단행된 북한의 두 번째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 남북간 긴장의 수위는 한껏 높아졌다. 이제는 당장 내일 서해 바다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대립의 강도는 높아졌다. 심지어 ‘지상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니’ 크게 동요할 상황은 아니라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만큼 긴장이 팽배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사실은 이 같은 심각한 대립의 국면에서도 정부에 대한 지지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군사 충돌이 얘기될 만큼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도 정부의 지지도는 정체 내지는 하락했다. 2006년 가을의 1차 핵실험 직후부터 이명박 당시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를 당내 경선 레이스에서 앞서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또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정부의 지지도를 잠시나마 반전시켰다는 점을 기억해 볼 때 요즘 나타나는 대외 이슈와 국내정치의 분리는 새삼스럽다.

필자가 여기서 ‘안보불감증’, 혹은 ‘군 통수권자에 대한 지지의 결핍’을 개탄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대북정책을 포함한 대외정책이 정부에 대한 신뢰의 하락 속에 무관심의 세계로 추락하지 않는지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초기의 북풍 논란이 정권에 의해 대외정책이 오용되던 시대의 유물이었다면 햇볕정책에 대한 뜨거운 찬반은 대외정책이 당파적 갈등의 한복판으로 불려나와 국내정치 갈등의 표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다수의 시민은 대북정책의 당쟁화에 지친 듯하다. 남북대결이든 화해이든 웬만한 충격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태로까지 치달은 듯하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당파성이나 권력 남용이 신중한 대북정책의 걸림돌이었다면 이제 무관심이 대북정책의 새로운 장애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닌지?

北‘위험한 일탈’ 대처하려면

세 번째는 한국 사회의 상황에 점차 둔감해져 가는 듯한 북한이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은 우리 사회에 대한 면밀한 관찰자이고 북한의 판단과 행동은 우리 사회의 상황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 왔다. 하지만 몇 주 전의 북한 핵실험은 이 같은 기존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한국 사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 충격에 빠진 사이에 이뤄진 핵실험은 매우 이례적인 일탈이다. 한반도의 상황 전반에 대한 면밀한 관찰보다는 스스로의 급박한 사정이나 스케줄에 따라서 행동하는 북한의 새로운 일탈을 새로운 위험으로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정리해서 말하자면, 가장 큰 위기는 위험 자체에서 오지 않는다. 진정한 위기는 방치되는 위험에서 온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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