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초 코카콜라의 더글러스 이베스터 회장은 획기적인 구상을 밝혔다. 코카콜라 자동판매기에 온도 센서와 연결된 가격 표시장치를 설치해 더운 날에는 콜라를 비싸게 팔고, 서늘한 날엔 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이 콜라를 더 필요로 하는 더운 날, 즉 수요가 커질 때 실시간으로 값을 올려 이윤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며칠 뒤 코카콜라의 홍보 책임자는 이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뜨거운 여름날 값이 비싸지는 콜라 자판기를 찾아볼 수 없는 걸 보면 이 아이디어는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베스터 회장의 계획에는 결함이 있었다. 소비자들은 업계 1위 기업이 가격으로 ‘장난’치는 걸 싫어했다. 또 더운 날 코카콜라 값이 오르면 소비자는 다른 공급자의 제품, 예를 들어 펩시콜라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베스터 회장은 이 아이디어를 비롯한 여러 경영상의 실수가 문제가 돼 이듬해 해고됐다.
이처럼 수요-공급의 법칙을 어설프게 이용하려는 기업은 낭패를 보게 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3월 고(高)유가로 고생하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유류에 붙는 세금을 10% 깎아 줬다. 일부 경제 관료들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소비가 줄도록 놔둬야 한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정치 논리가 승리했다. 세금이 깎인 만큼은 아니지만 휘발유, 경유의 가격은 하락했다. 낮아진 가격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기름값이 오를 때까지 차를 더 끌고 다녔다. 국제유가가 오른 만큼 국내 수요가 줄지 않아 원유는 더 수입됐고 무역수지는 나빠졌다. 세금을 덜 거둬 재정도 축났다.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다. 유류세 인하는 지난해 말로 끝났다.
작년 12월 30달러대로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최근 7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정부는 다시 고유가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이달 4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을 원가(原價)에 연동시키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다. 원유 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 전과 같은 양의 전기, 도시가스를 쓰더라도 비싼 요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당장 나부터 여름철 집안의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된 게 아닌지 살필 것 같다. 이번엔 유가가 높아질 때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정상적인 방향으로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할 것이란 뜻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성패를 결정할 열쇠 또한 가격이다. 막대한 개발비용을 투자하다가 유가가 떨어지면 필요성이 줄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기업도 녹색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화석연료 가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녹색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화석연료 가격을 높게 유지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독려해 세계 풍력발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풍력 대국’으로 성장한 덴마크의 사례를 정책 당국자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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