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투자자 모아 부실기업 인수
기업가치 올린 뒤 되팔아 수익 내죠
외환위기 때 외국 유명 PEF 상륙
국내기업 샀다 되팔아 차익 챙겨
2004년부터 국내 PEF 설립 활성화
펀드(Fund)는 투자할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투자전문가에게 돈을 맡기는 간접투자 상품을 뜻합니다. 펀드는 보통 증권사나 은행에서 다수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공모(公募) 펀드가 많습니다. 공모펀드의 투자 대상은 부동산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매우 다양하지만 특히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상품이 많습니다.
이에 비해 PEF는 소수의 투자자에게 알음알음으로, 즉 사모(私募)로 돈을 모아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PEF는 투자 대상도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부실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올립니다. 기업 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서 수익을 내는 것이지요. 자본시장통합법에 등록된 PEF의 법적 용어는 ‘사모투자전문회사’이지만 흔히 사모펀드, 사모투자펀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국내에서 PEF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부실해지자 외국의 유명 PEF들이 들어와 싼값에 국내 기업을 산 뒤 되팔아 큰 이익을 냈습니다. 미국계 PEF인 칼라일은 외환위기 직후 한미은행을 사들였다가 몇 년 뒤 씨티은행에 되팔아 6600억 원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미국계 PEF인 뉴브리지캐피탈도 2000년 제일은행을 샀다가 몇 년 뒤 스탠더드차터드은행에 되팔아 1조 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활동한 PEF는 모두 해외에 설립된 PEF였습니다. 국내에 PEF가 설립된 시점은 2004년입니다. 2004년 12월 27일 설립된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미래에셋파트너스 1호’를 기점으로 국내 PEF 설립이 활발해졌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에 등록된 PEF는 총 81개이고 투자규모는 15조7882억 원에 이릅니다.
최근 금융위기로 기업 가치가 낮아지면서 이를 기회로 삼는 PEF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PEF들이 살 만한 기업이 시장에 매물로 많이 나온 것도 원인입니다. 두산그룹은 최근 미래에셋PEF와 IMM프라이빗에퀴티에 계열사 지분 일부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산업은행도 최근 KKR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공동 투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영국의 유명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달 14일 아시아지역에서 PEF들이 한동안 움츠렸다가 다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PEF들은 아시아에서 사용하기 위해 200억 달러의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합니다. 유명 PEF인 TPG는 최근 중국의 신발 소매업체인 다프네 인터내셔널에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베인캐피탈은 6억3000만 달러로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유통업체인 궈메이전기(國美電器)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PEF는 상당 규모의 기업 지분을 인수하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대주주로서 경영과 관련된 여러 사항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실적이 부진한 자회사를 매각하라든지, 불필요한 인력 상당수를 해고하라는 등의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죠. PEF는 외국에 진출해 부실기업을 사들인 뒤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투자를 회수하는 사례가 많아 이른바 ‘먹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PEF가 투자한 많은 기업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업 가치가 오르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종업원들은 큰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KKR가 1986년에 46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유통업체인 세이프웨이를 인수한 것은 유명한 PEF 투자사례입니다. KKR는 인수 이후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세이프웨이 일부 점포를 정리하고 원가절감 정책을 펴 세이프웨이의 영업이익률과 매출액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이 해고됐습니다. 미국 유명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의 수전 팔루디 기자는 세이프웨이에서 해고된 직원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기사로 1991년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