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광]건설법 개정안, 하도급 비리 악화시켜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다단계 하도급, 부풀려진 공사비용, 업체끼리 나눠먹기, 부실시공, 비자금 등은 건설업계를 부정부패가 판치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건설업계는 이런 부정적 요소의 청산을 오랜 숙제로 삼아 왔다. 반세기 넘게 지속된 후진적인 건설산업의 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건설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도 팽배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이러한 건설업계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합리성과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원청공사를 주로 하는 종합건설업과 하청공사를 주로 하는 전문건설업의 칸막이 영업 범위를 폐지해 서로에게 막힌 시장을 터놓았다고 하지만 종합건설업체에는 통제장치 없이 하도급을 허용한 반면, 전문건설업체에는 하도급을 빈틈없이 불허했다. 특히 발주자의 승낙 없이 종합건설업체 간의 하도급을 허용해 그렇지 않아도 중층적인 하도급의 단계가 더 늘어날 수 있도록 했다.

하도급 단계의 증가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고질적 하도급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는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된다는 점을 뜻한다. 하도급 단계의 증가는 이미 한계선상에 있는 하청업체를 벼랑으로 내몰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는 단계마다 건설업체의 이윤과 관리비용이 발생하므로 전체 공사비는 늘어나는 반면, 마지막에 실질적 시공을 맡은 하청업체는 계획보다 줄어든 비용으로 공사를 하므로 품질도 낮아지고 안전관리도 소홀하게 된다. 정부가 얼마 전에 일부 공공공사에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를 도입한 이유도 기존 ‘발주자-원청업자-하청업자’의 3단계인 건설 생산구조를 ‘발주자-시공자’의 2단계로 축소해 이런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발주자가 원청업체의 하도급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없앤 점도 이번 개정안의 큰 문제점이다. 현행 법규는 다단계 하도급의 여러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종합건설업체 간의 하도급은 금지하고,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하도록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가 기존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더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은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한 종합건설업체 간의 하도급을 발주자가 통제할 수 있는 장치라도 둬야 한다.

개정안은 건설업체 간의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를 살리는 데도 실패했다. 즉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를 같은 시장에서 경기하도록 해 놓고 종합건설업체의 하도급은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하고 전문건설업체의 하도급은 원천적으로 막아 놓았다. 건설공사의 내용이 같더라도 시공자가 종합건설업체인가 또는 전문건설업체인가에 따라 생산 방식을 달리해 놓은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특히 규모가 큰 종합건설업체와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업체를 차별하는 방안은 거인인 골리앗에게는 강력한 무기를 주고 소년인 다윗에게는 약한 무기를 주어 싸우게 하는 불평등한 경기 규칙을 제안한 것과 같다. 다윗의 기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 수 있겠는가. 시장의 문을 여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은 더 중차대한 정부의 책무이다.

개정안을 그대로 확정한다면 건설산업 혁신은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현재의 모순을 더 심화시키고 건설업계 내부의 이해관계 다툼에도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다행히 문제점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있다. 정책당국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균형감각을 회복해서 합리적인 조정자로서 자리 잡기를 권한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또 몇 년이 지나야 건설산업 선진화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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