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깨진 창문’ 어찌할 건가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경찰이 상습 시위꾼 수사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11명 구속, 106명 불구속 입건, 그리고 14명은 지명수배했다는 소식이다. 올 들어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이후 서울의 도심은 주말마다 다양한 구호를 앞세운 시위대에 점거됐다. 시위 끝엔 일부 극렬 시위대의 경찰 폭행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상습시위꾼 감시-처벌 능사 아니다

시위 빈도의 증가와 사회적 불안의 체감(體感)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 관계를 지원하는 범죄 사회학 개념 중 ‘깨진 창문(broken window)’이란 단어가 있다. 개념의 발단은 작은 실험으로부터 시작됐다. 형편없이 부서진 자동차를 길거리에 방치해둔 결과, 처음엔 무심코 지나치던 주민들은 도난당한 차량임이 분명하고 차량도난 사고가 방치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고조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깨진 창문’으로 표상되는 사회 무질서가 시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킴에 따라 범죄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했다.

상습 시위꾼의 존재를 더는 묵과해선 안 되겠다는 결단의 이면엔 점증하는 시민의 불안의식 앞에서 무기력한 경찰상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자리하는 듯하다. 관련 보도를 접하니 누가 상습 시위꾼인지 그들의 정체성과 더불어 어떻게 시위를 상습화하는지가 특별히 눈길을 끈다. 상습 시위꾼 4명 중 1명이 무직자로 나타났고 3명 중 1명은 자신의 직업을 밝히길 거부했다고 한다. 연령별로는 20대부터 40대가 골고루 분포된 가운데 10대도 9명이나 포함됐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 및 실직이 일상화되어 가는 고(高)실업사회에서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되는 이가 늘어가면서, 누적된 개인적 분노를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를 향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셈이다.

시위의 상습화를 가능케 한 원동력 중 하나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자생적 시위조직이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이야말로 인터넷상에서 활개치는 ‘조직 없는 조직’의 전형적 사례일 듯싶다. 인터넷이 양날의 칼임은 익히 알려진 터이다. 동일한 공간에서 대중의 지혜가 결집되고 참여민주주의의 통로가 활짝 열리며 양화(良貨)가 악화(惡貨)를 구축함으로써 사회적 신뢰 기반의 확대가 가능해지는가 하면, 거꾸로 익명성을 무기로 욕설과 비방, 거짓 정보와 언어폭력이 넘쳐나고 사실무근의 악의적 여론재판이 횡행하면서 우리 모두를 초(超)위험사회로 몰아가는 무기가 된다는 사실은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닐 게다.

실효성 높은 고용안정 대책 급해

시위 상습화의 주체 및 방법이 알려진 만큼 근절 방안을 심층적으로 모색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명백한 불법시위 및 과도한 폭력시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이는 없겠지만 ‘법질서가 중시되는 나라’를 명분으로 일사불란하게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은 재고를 요한다. 하나의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요, 폐쇄회로(CC)TV 설치나 경찰력 증대를 통한 공권력 강화가 범죄발생률을 전격적으로 낮추었다는 증거는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근본적 원인에 천착하여 사회구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폐해를 완화하고 고용 불안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효성 높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시급하다. 사회 심리적으로는 누적된 불만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대적 박탈감 및 계층적 위화감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평소 소수집단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다각화하는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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