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강제합방 조약은 국제형법의 재판 대상인 (일본이 저지른) 국가 범죄로 다뤄야 합니다.”
한일강제합방 관련 학술회의 참가를 위해 최근 내한한 무샤코지 긴히데(武者小路公秀·사진) 일본 오사카경법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80)은 자국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비판해 온 대표적인 일본 학자다. 그는 21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한일강제합방 조약은 평화와 인도주의에 반하는 국제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는 2010년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을 앞두고 동북아역사재단이 22일 마련하는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 국제학술회의(본보 6월 18일자 A21면 참조)에서 ‘한일병합의 불법성과 역사적 교훈’을 주제로 기조 연설한다. 무샤코지 소장은 유엔의 연구기관인 유엔대학의 부총장(1976∼1989년)을 지냈다.
―기조 연설문에서 한일강제합방 조약은 현행 국제법으로 무효이지만 조약 자체가 범죄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한일강제합방은 관련 협상이 군사적 압력으로 진행됐을 뿐 아니라 절차를 갖추지 못했다. 세계 어떤 현행법에서도 강제에 의한 계약은 무효다. 그 조약은 ‘lex lata(렉스 라타·실제로 존재하는 법이라는 뜻의 라틴어)’의 측면에서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더라도 ‘lex ferenda(렉스 페렌다·법적 정의에 따라 있어야 할 법을 가리키는 라틴어)’의 관점에서 그 조약은 평화와 인도에 반하는 국제범죄다.”
―국제형법상 국제범죄는 전쟁이나 군사력을 동원한 침략의 경우에 성립된다. 1946∼1948년의 도쿄재판도 전쟁범죄자 처벌에 국한됐다.
“현행 국제형법상으로만 본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한일강제합방이 국제범죄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국제형법상 국제범죄는 법적 정의(正義)가 아니라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됐기 때문이다. 도쿄재판에 참여한 네덜란드 재판관 베르트 뢸링은 “당시 식민주의를 범죄로 규정하면 미국 노예제 문제까지 부각되기 때문에 전쟁 범죄만으로 국한시켰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도쿄재판에서 한일강제합방과 일제 강점이 논의되지 못했다. 나는 전쟁 없는 식민지화도 범죄라는 시각에서 ‘식민지 범죄’라는 새 개념을 제안한다.”
―한일강제합방을 국제범죄로 인정하는 게 한일관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19, 20세기 초 서구 열강 중 어느 나라도 식민주의를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이 한일강제합방을 범죄로 인정하면 일본 국민은 그 용기와 양심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전쟁 없는 식민주의는 20,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반성을 통해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국제 활동에 한국과 함께 나설 수 있다. 그것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한일강제합방이 무효라고 한 사사가와 노리가쓰 메이지대 교수는 교정에 들어온 일본 우익세력에게서 협박받기도 했는데….
“일본 우익 잡지는 일본의 인종차별, 식민주의를 비판한 나를 “일본의 수치를 드러낸 반일본주의 지식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이유로 내가 애국주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수치를 내보이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에 공헌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긍정하는 일본 우익의 힘이 여전히 크지만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희망이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