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맘때 같은 6월의 어느 날, 대학생이었던 나는 서울 종각 근처를 걷고 있었다.
곳곳에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나를 감시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걷던 중 한 사복경찰이 막아선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학생증을 꺼내기가 무섭게 잡아채 내달리는 그를 쫓아갔더니 이른바 ‘닭장차’(방석철망을 씌운 전경버스) 앞이었다. 머뭇거리던 나는 어느새 닭장차 안으로 밀쳐졌다.
버스 안은 이미 나처럼 졸지에 끌려온 사람들도 그득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왜 자신을 끌고 왔는지 항의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버스 안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바로 공포였다.
문이 닫혔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버스가 멈췄다. 내려 보니 서대문경찰서였다. 경찰서 마당은 우리처럼 끌려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대략 1000명쯤 됐을까.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일어서!” “앉아!” 하며 인원점검이 시작됐다. 강당 같은 곳으로 끌려가 끝없는 기다림…. 물론 아무 설명도 없었다.
밤 12시가 지나고서야 조를 나눠 한 사람씩 불러들인다. “집이 어디냐” “시내에 왜 나왔느냐” “시위하러 나왔느냐” “학교에서 서클을 뭘 하느냐” 등등을 묻는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또 기다리고….
새벽이 돼서야 무슨 각서 같은 걸 나눠주고 서명하란다. 서명했더니, 집에 돌아가도 좋단다. 하루 낮과 밤 인신을 사실상 감금한 데 대한 사과는커녕 단 한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경찰서 문을 나서면서 풀려난 데 대한 안도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그렇게 당하고도 풀려난 걸 안도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가슴이 먹먹했다. 멀리서 떠오르는 해가 칠흑처럼 어둡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나처럼 무심코 시내에 나왔다가 끌려갔던 지인이 적지 않았다. 끌려간 이들은 서울 시내 여러 경찰서에 분산 수용됐었다. 대규모 시위가 예상된다는 경찰정보에 따라 시위 잠재인력을 대량 소개(疏開)시켜 말 그대로 시위를 ‘원천봉쇄’한 것. 1980년대 초 군부독재정권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 등 어떤 언론매체에서도 하루 낮과 밤 사이에 일어난 대규모 인권유린사태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 바로 독재다. 공개적으로 ‘독재’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다면 그건 독재가 아니라는 반증(反證)이다.
물론 현 정권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나는 지난달 29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불도저 대통령’에게선 좀처럼 강한 신념과 비전을 느낄 수 없다. …TK(대구경북) 독식 인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물결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읽힌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없는 게 독재다. 현 정권이 무능하다고 말하는 건 좋지만, 독재라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독재가 뭔지 모르거나, 독재시절을 겪어본 이라면 사심(邪心)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심이야말로 독재만큼 위험하다. 독재의 본질도 따지고 보면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니까.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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