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치영]한국계 변호사들의 성공스토리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미국은 적당히 법을 어기면서 살기 힘든 나라다. 운전을 할 때나 수영장 극장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항상 법과 규정의 제약이 따른다. 이를 어기면 수백 달러에서 심지어 수천 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에서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또 평생 법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은 다르다. 사소한 다툼도 특히 돈이 걸린 문제라면 법의 심판을 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교통경찰이 발부한 범칙금 딱지가 억울해도, 집 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주지 않으려 할 때도, 옛 애인이나 친구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을 때도 말로 해결되지 않으면 법에 호소한다.

한국에서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반(半)우스갯소리’로 주고받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법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판사 주디(Judge Judy)’처럼 실제 고소인,피고소인과 전직 판사가 출연하는 법정 TV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주디 샌들린 씨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 덕분에 1996년 9월부터 인기리에 방영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월가가 있는 뉴욕 맨해튼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로펌의 본산이다. 미국 로펌들은 민형사 사건의 수임과 함께 인수합병(M&A), 증권발행, 대형 부동산 매매 등 대기업 거래의 자문을 통해 큰돈을 벌어들인다. 맨해튼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대표적인 로펌 사무실이 몰려 있다.

이런 맨해튼의 로펌에서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변호사가 적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와 맨해튼의 상위 로펌에서 자리를 잡은 뒤 로펌의 ‘파트너’ 지위까지 오른 성공 스토리까지 종종 나오고 있다.

고려대 법대 82학번인 김창주 변호사(46)는 맨해튼에 본사가 있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에 1800여 명의 변호사를 둔 거대 로펌 그린버그 트라우리그의 시니어 파트너다.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 주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5년부터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얼마 전에는 아시안계 미국 기업인들의 단체인 ‘아시아 아메리칸 비즈니스 개발센터’가 뽑은 비즈니스계의 우수 아시안 아메리칸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100대 로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듀앤 모리스에서 올해 1월 1일자로 파트너가 된 염정혜 변호사(40·여)도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뒤 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6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토종’ 한국인 변호사다. 미국의 20대 로펌 중 하나인 듀이 앤드 르뵈프엔 공창도 변호사(41)도 있다. 2007년 1월 파트너가 된 공 변호사는 기업 인수합병을 담당하며 굵직굵직한 M&A 건을 처리했다.

토종 한국인 변호사와 함께 미국에 이민 온 1.5세 또는 2세 재미동포까지 따지면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변호사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성공한 변호사가 늘고 있다는 것은 크게 보면 한미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한 유대인들은 돈과 법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월가와 로펌을 장악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 한국계 법조인들의 성공 스토리가 많아지면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로 미국의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직에 오른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 같은 이가 한국계에서 나오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