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제언이 4·29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범여권(汎與圈)의 자기개혁 의지를 솔선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국외자(局外者)의 자리에 서서 국정과 의회정치 표류의 복합적 요인에 대해 깊이 천착하지 않은 채 ‘국정 기조 전환’을 너무 쉽게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2007년 대선과 작년 총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 민의(民意)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었다고 우리는 본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치(法治)를 복원시켜 달라는 요구였다. 이 같은 민심에 부응하는 것이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에 주어진 소명이며 국가 백년대계를 튼튼히 하는 길이다.
현 정부를 흔들기 위해 반(反)민주 반시장 반법치를 일삼는 세력이 판을 치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국정기조를 전환할 것이 아니라 국정기조를 심화하고 실천력을 높이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계승과 발전, 이념 아닌 실용, 협치’ 같은 몇 마디 말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그리고 이를 통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꾀할 수 있다고 본다면 지극히 안이한 인식이다.
국회와의 협치가 안 된 책임을 대통령과 정부에만 묻는다면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다시피 하는 일부 야당이 오히려 더 힘을 얻고 기고만장해질 수 있다. 민본21에 참여하는 소장 여당의원 자신들도 진정으로 입법의 생산성을 높이고 의회정치의 질적 제고를 위해 몸을 던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국회의석의 60%에 가까운 170명의 의원이 있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의회정치보다 ‘당내 정치’에 더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민본21은 교육정책에 관해서도 “정부가 경쟁 중심의 우(右)편향 정책을 우선 부각시켰다”면서 “교원평가제는 교육정책에 대한 전반적 신뢰 미흡으로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나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인식이다. 이 나라가 세계화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학교와 교육과정을 개혁해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이 정부가 이런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문제다.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원평가제가 표류하는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완강한 저항 탓이 크다. 의원들이 국민을 설득하고 법제도를 바로 정비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텐데도 교원평가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한참 잘못됐다.
어제는 이 대통령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 민본21이나 이 대통령이 사용하는 ‘중도’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까지 적당히 껴안고 이념적 갈등을 미봉하고 가자는 생각을 깔고 있는 것이라면 위험성이 크다. 애매한 중도론이 오히려 사회 혼란의 뿌리를 키울 우려가 없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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