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법정서 4년만에 잡아본 엄마손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이혼가정 면접 교섭’ 판사
직접 만남-화해까지 주선
“상처 고려한 치료司法을”

지난달 수원지법 안산지원의 가사조정실. 현지(가명·8·여)와 현철(가명·6) 남매는 4년 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다. 2005년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 뒤 아빠의 반대로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 엄마는 법원에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면접교섭 이행명령을 신청했고 장창국 판사의 주선으로 이날 만남이 이뤄졌다. 엄마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남매는 눈물을 꾹 참은 채 엄마를 애써 외면했다.

엄마: (현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너무 보고 싶었어.

현지: (뿌리치며) 싫어요.

엄마: 현지가 크면 엄마를 이해할 거야. 너희를 버린 것이 정말 아니란다.

현지: 거짓말하지 말아요.

판사: (눈물 닦아주며)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도 않고, 아저씨라도 화가 많이 났겠다. (엄마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는가 보죠?

현지: (엄마가 건넨 선물을 던져 버렸다.)

현철: (선물을 받은 뒤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판사: (남매의 손을 차례로 엄마 손 위에 얹어 놓으며) 이것이 엄마의 손이란다.

남매: (엄마의 손을 한참 잡은 채 울다가 아빠가 들어오자 재빨리 손을 놓았다.)

현철이는 2년 전부터 실어증을 앓을 정도로 상처가 깊다. 장 판사는 엄마와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만남을 주선할 예정이다. 또 아빠 엄마에게 올바른 자녀 양육을 위한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통상 이혼 가정의 면접교섭을 명령할 때 부모와 아이들이 만날 장소와 횟수 정도만 정할 뿐, 만나는 과정에는 깊이 개입하지 않는다. 정 판사의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다.

장 판사는 법원이 이혼 판결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자녀의 상처까지 고려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며 현지, 현철 남매의 사례를 시나리오 형태로 적어 최근 법원 ‘가사소년커뮤니티’에 올렸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후견자로서 개입하는 이른바 ‘치료 사법(司法)’의 좋은 사례라며 전국 법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이 글을 법관 전원에게 공개했다.

판사들의 응원 댓글이 수십 건 달리고 가사 재판에 있어 치료 사법의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사사건뿐만 아니라 형사사건에서도 심리 및 재활치료를 병행하는 치료 사법을 펼쳐 사건 당사자나 재소자 등의 교화에 힘쓰고 있다.

장 판사는 “법원이 아이들의 상처를 방조한 측면이 있다”며 “이혼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훈련을 시키거나 적어도 증오심을 없애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규 법원행정처 판사는 “법원이 간과했던 자녀 복리 최우선 이념을 새삼 깨닫게 한 사례”라며 “면접교섭실 개설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신청이 없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면접을 명령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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