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인제]부패에 눈감는 사회는 미래 없어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신호기의 작동이 더디자 하나 둘 무단횡단을 시작한다. 곁눈질하던 다른 행인도 우르르 길을 가로지른다.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지만 역부족이다. 두어 명이라도 잡아 범칙금을 물리려 하나 한 사람밖에 붙들지 못한다. 그가 목소리를 높인다. 왜 하필 나인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냐고. 이 불운한 교통위반자가 모르는 점이 있다. 법 앞의 평등은 이럴 때 쓰라고 세운 원리가 아니다. 불법 행위자가 이기적인 목적에서 끌어댈 평등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법 앞의 평등은 철칙이지만 불법 앞의 평등은 정의가 아니다.

작은 불법이든 큰 비리든 강한 전염성을 갖는다. 여기저기서 저지르기 시작할 때 합당한 제재가 뒤따르지 않으면 너도 나도 슬금슬금 합류한다. 유혹이 너무 달콤하니 말이다. 나는 도둑에 뛰는 파수꾼이라고 호각소리는 항상 뒤쫓아 다니기 십상이다. 운 나쁘게 걸린 자는 왜 유독 나를 향해서만 투망질을 하느냐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고기를 잡을 때에는 그야말로 그물을 던져 잡아야지 쌍끌이 저인망으로 씨를 말려서는 안 된다. 온 세상을 감옥으로 만들지 않는 한 누구도 그들을 남김없이 가둘 능력도 권한도 없다.

소매치기나 사기도박 같은 범죄는 길목에 그물만 쳐놓고 기다려도 반타작은 할 터이다. 권력형 부패, 기업형 비리, 지능형 범죄 같은 거악에도 같은 방식이 통할까. 큰 악이라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거나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다니는 식은 아니다. 때로는 깊은 담장 안에서 온화한 미소로 비싼 애완견을 쓰다듬거나 값진 난초에 물을 뿌리며 먼지를 닦아내고 있을지 모른다. 또 때로는 높은 단상 위에서 엄숙한 어조로 지식기반경제를 논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을지 모른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통로가 어디인지 살피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애써 그물을 쳐 놓아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제대로 표적을 삼아 치밀한 기획 아래 확실히 올가미를 걸어 잡아채지 않는 한 가면을 벗기고 맨살을 드러나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름 모르는 거악, 그리고 그들에게서 잔 권력, 푼돈깨나 나눠 쓴 사이비 책사나 집사는 외친다. 표적수사, 기획수사라고. 그들이 거악을 도모할 때 얼마나 날카롭게 거대하고 향기로운 먹잇감의 급소를 겨냥했으며 얼마나 물샐틈없는 계획으로 소리 없이 낚아챘던가. 가위 표적비리, 기획부패라고 할 만하다. 표적비리, 기획부패에는 표적수사, 기획수사 이외에는 맞수가 없다.

경제의 신호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침체의 늪에서는 원칙이고 윤리고 잠시 접어두자는 말이 자못 솔깃하다. 살아남는 일 이상의 원칙이 어디 있느냐, 잘살게만 된다면 부조리라도 눈 한번 질끈 감자, 무능한 청백리보다 유능한 탐관오리를 택하는 편이 말 그대로 실용주의가 아니냐고 말이다. 그럴싸한 처세론은 급기야 부패야말로 일종의 윤활유라는 궤변으로 발전한다.

거기서 일단 멈춰 우리 미래세대의 냉소 어린 대꾸부터 들어보자. 중고교생의 80% 가까이가 우리 사회는 썩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반 이상이 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단횡단을 하겠다고 한다. 나 혼자만 잡는다고 큰소리치는 어른을 보고 자란 그들이 아닌가. 국민이 더 잘살 수 있다면 지도자의 어느 정도 부패행위는 괜찮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부패는 있어도 된다, 금품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쓰겠다는 대답이 10∼20%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부패는 아무리 불편해도 진실과 마주하지 않는 한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걷어내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한걸음도 갈 수 없다.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