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기법을 빌린 ‘순교자’는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순교한 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고난과 실존의 문제, 현실의 진리와 위선의 문제 등 근본적인 인간 영혼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어 번역판에서 “순교자란 제목을 생각할 때 교(敎)를 너무 강하게 인식하지 말고, 그보다 순(殉)이라는 말이 지닌 진솔한 뜻을 더 크게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김은국은 1947년 월남해 서울대에 진학했으나 6·25전쟁이 터지자 학업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통역장교로 일하다 인연을 맺은 미군 장성의 도움으로 휴전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학사 과정을 끝내고 석사 학위를 준비하던 중 순교자를 썼다. 이 작품에 이어 5·16군사정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심판자’,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 등 그의 주요 작품은 모두 조국인 한국을 무대로 하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다뤘다. 그의 작품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1990년대 초반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커피 광고 모델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김은국의 작품과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존주의적 고뇌였다. 식민지, 분단, 고향과의 이별, 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온갖 파고(波高)를 직접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매사추세츠 주의 자택에서 77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 순교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 새삼 떠오른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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