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정수]사립대 구조조정 인센티브를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교육과학기술부가 부실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먼저 30여 개 대학에 대한 경영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재학생 충원율과 등록금 의존율 등 재무지표와 신입생 충원율, 중도 탈락률 등 교육지표로 구성된 부실대학 판정 기준도 정했다. 조사 결과 독자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대학에는 경영부실 대학 판정을 내리고, 타 대학과의 합병이나 해산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살생부’ 작성 방식의 구조개혁은 대학선진화위원회가 발족할 때부터 우려되던 바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철학인 자율과 경쟁, 창의와 실용, 그리고 다양성 및 수요자 선택, 책임성 확보와는 배치되는 정책방향이다. 오히려 대학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합병 등 퇴출 기제를 활용하는 등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는 어제오늘 불거진 것은 아니다. 1997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시행되고 대학정원의 교육여건 연동제가 운영되면서 대학 입학정원은 대폭 증가했으나 퇴출경로는 마련되지 못했다. 저출산 등으로 입학자원이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가속하면서 지방대학의 미충원 현상이 심각해져 사회적인 정책이슈가 되어 왔다. 이에 더해 각 대학은 특성화되지 못하고 학위를 남발하며, 백화점식의 유사학과들을 차별 없이 설치해 대학교육의 세계경쟁력이 바닥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여건은 열악하며 인력 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는 구조개혁의 당위성을 더하고 있다.

대학의 구조개혁은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참여정부에서도 대학자율화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대학정원의 지속적 감축을 추진했다. 특히 대학구조개혁 지원사업을 통해 사립대학의 통폐합, 16개 구조개혁 선도대학을 선정 지원했고 18개 국립대학을 9개로 통합했다. 당시 부실 사립대학의 퇴출방안을 포함하여 대학구조개혁 특별법안을 입법 추진하였으나 여당에서 설립자에게 재산을 환원하는 법률안에 반대하여 무산된 바 있다.

사회수요에 적합한 인력양성 구조로 대학 체제를 전환하고 대학운영시스템을 효율화하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미충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을 통폐합해 대학의 강점 분야로의 자원 재배분 과정을 지원하는 정책은 그 우선순위가 높다. 학교가 구조조정될 경우 학생들에게 당장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 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합리적 출구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학생이 줄어드는 데 따른 재정적 어려움을 회피하려고 ‘학위장사’ 등 불법, 편법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대학에 강력한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경영이 불량한 사립대학을 선별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민간 주도의 사립대 구조조정 방안을 견지해야 한다. 사립학교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퇴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퇴출 제도와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대학 정보공시제도를 정착시켜 신뢰성 있는 재무정보와 교육정보를 투명하게 수요자에게 공개하고 대학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며 이 중 우수 대학에 재정 지원을 확실하게 하는 방식으로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가 2005년부터 시행해온 국립대학 구조개혁 지원사업과 같이 사립대학도 합병 시 재정지원을 통해 자발적인 합병을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