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다음 날인 6월 13일 현직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개혁파 후보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1100만 표 차로 눌렀다고 공식 발표하자 민심이 뒤집어졌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비슷했는데 큰 표차로 승부가 나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부정선거”라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 부정선거도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린 이슬람혁명 이후 30년간 지속된 신정(神政)체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 30년 동안 이란은 8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고 미국 등 서방을 사탄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부딪쳤으며, 경제마저 실패했다. 모든 권위는 종교에서 나왔고, 정치와 자유는 숨을 죽였다. 결국 사람들이 서서히 권위로부터 떠났다. 종교지도자로 세속의 권력까지 틀어쥔 하메네이의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권위도 한 축이 무너졌다. 그는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졌다. 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설교했지만 시민들은 거리로 향했다. 신정에 대한 반기요, 그에 대한 반발이었다. 사실 이번 투표는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투표라기보다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 대한 신임을 묻는 성격이 강했다.
테헤란 거리로 나선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그때를 생각나게 한다. 대학생과 차도르를 두른 여성, 일반 시민이 한데 섞여 정렬한 경찰과 맞붙었다.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선 그들이었다. 그들의 동력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1987년 6월 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 거리로 나온 넥타이부대가 그랬을 것이다.
막는 자는 무너뜨리려는 자에게 무자비했다. 이란의 27세의 여대생 네다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섰을 것이다. 총알에 맞아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얼굴에 흘러내린 피는 저항의 상징이 됐다. 지난날 최루탄에 맞아 친구에 의지한 채 피를 흘리던 이한열 군이 그랬듯이.
이란 시위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떠받치는 무력,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사그라지고 있다. 이제 저항은 시민들끼리 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독재자를 타도하라”를 함께 외치는 소극적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 한밤의 우렁우렁하는 소리가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는 동지애를 확인시키며 30년 전 이슬람혁명을 성공시켰다. 이번에는 거꾸로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리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테헤란의 봄’의 성패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앞으로의 이란은 이전과는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이미 거리로 나온 수백만 명의 가슴에 저항이라는 의미가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란 국민이 80년대 우리가 그랬던 것 같은 감격의 순간을 맞이할 것으로 믿는다. 이란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20여 년 동안 처음 그 자리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했음을 새삼 느낀다. 그때 분위기만 같으면 벌써 많은 것을 이뤄내고 더 멀리 나아갔어야 했는데…. 민주주의는 꼭 그 국민의 의식만큼만 성숙한다고 했다. 거기에는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이란 민주화의 성공을 기대한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