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옥쇄파업에 줄 떡이 없다

  • 입력 2009년 6월 29일 19시 53분


한 은행장이 최근 중동의 아부다비 관리를 만나 “한국 제조업에 투자하는 건 어떠냐”며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그 관리는 “강성 노조 때문에 중국 자본(상하이자동차)이 실패하고 돌아갔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는 외국 언론의 보도 이상으로 쌍용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부다비는 전문연구자를 수시로 한국에 보내 경제 전반은 물론이고 기업 상황까지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

외국 자본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행동하는지를 다 보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900여 명이 평택공장을 불법 점거한 채 벌이는 ‘옥쇄(玉碎)파업’도 당연히 관찰 대상이다. 쌍용차는 작년 12월 대주주 상하이차의 자본 철수 이후 올해 2월부터 법정관리 중이다. 법원은 ‘정리해고를 순조롭게 추진하고 신규자금을 제때 조달하는 조건’으로 부도를 막아주면서 법정관리를 허용했다. 노조는 이런 처지를 부인하면서 ‘고용보장’ 등을 외치며 오늘로 40일째 옥쇄파업 중이다.

쌍용차 회생 방안이 아무리 훌륭해도 노조가 공장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으니 채권은행은커녕 신이라도 회생시킬 수 없다. 국내외에서 새 자본을 끌어들여야 6000억 원의 부채를 일부 갚고 공장을 돌릴 수 있는데 노조는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쌍용차에 투자하지 말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다. 5월엔 쌍용차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3890억 원 더 많다는 평가였지만 생산도 판매도 거의 중단된 지금은 ‘파산이 낫다’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

GM대우 사례에서 한 수 배울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대우차는 GM 포드 등의 외자 유치가 불발돼 2000년 11월 최종 부도 처리됐고 다음 해 1750명을 정리해고했다. 노조의 공장 점거와 농성을 거쳐 2002년 GM에 인수된 뒤 노사가 품질 및 생산성 향상에 매진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05년 흑자를 내자 해고 노동자를 다시 불러들이기 시작했고 2006년엔 전원 복직에 성공했다.

쌍용차 노조는 GM대우 일시 해고자가 노사화합 덕분에 일터로 복귀하던 2006년에도 파업에 바빴다. 회사 측은 누적적자와 저조한 생산성에 견디다 못해 986명의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2002년 16만 대 생산체제에서 6900명을 고용했는데 2006년엔 12만 대 생산에 7600명이 됐으니 대수술이 절실했다. 그러나 노조는 전면 파업에 이어 15일간의 옥쇄파업으로 이를 철회시켰다. 쌍용차가 지금 법정관리 처지가 된 건 3년 전 인력구조조정 실패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옥쇄’란 옥처럼 아름답게 깨어져 부서진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다는 의미다. 쌍용차 노조가 일자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불법 점거한 평택공장에서의 파업엔 3년 전 미군기지 이전 반대 폭력시위를 주도한 좌파단체들이 속속 가담 중이라고 한다. 금속노조는 동조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에게 싸움터를 제공하고 이들의 불쏘시개로 희생당하는 게 쌍용차 노조의 숭고한 뜻인가.

쌍용차가 파업하는 사이 1000개 협력업체의 상당수는 일감이 없어 공장 가동을 멈췄고 직원들은 무기한 휴가에 들어갔다. 평택 경제도 엉망이 됐다. 정부는 자칫하면 다른 부도기업도 모두 살려줘야 하니 쌍용차를 무작정 지원할 수도 없고, 국내외 자본은 쌍용차에 눈길도 안 준다. 시장(市場)은 쌍용차 노조가 원하는 옥쇄를 구경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진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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