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6자회담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주최국으로서 리더십 역할까지 맡고 미국보다 더 적극적인 지지자가 됐다. 러시아 일본 한국은 6자회담에 참여함으로써 북핵 문제에 참여하는 발판을 갖게 됐다. 북한은 처음에는 6자회담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미국과 쌍무 접촉을 할 수 있는 구실을 얻자 못 이기는 체하고 들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이 어느 정도 미북 간의 중개자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이 북한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북한과 쌍무적 협상을 갖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 10월 이후부터이다. 부시 행정부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의 폐기)를 고집하는 동안 북한으로 하여금 핵시설을 가동하여 핵무기를 생산할 기회와 시간만 주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과 협상에 들어가 2007년 2월 13일 북한 핵 프로그램의 폐쇄, 불능화, 폐기라는 3단계 합의를 이끌어냈다.
6자회담 재개 위한 방편돼야
2·13합의 이후 2년 동안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하고 2008년 말까지 불능화 논의를 계속했다. 북한으로서는 핵 프로그램의 ‘휴면’이라고 할 수 있는 국면이었다. 그러던 어느 단계에서 핵물질을 추가로 생산하고 핵시설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함께 ‘현실화’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12월 검증의정서 거부였고, 금년 들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스케줄을 갖고 있고, 목표는 핵과 미사일 기술의 완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은 핵 활동을 재개하면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을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은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의 존재를 ‘실토(coming out)’하면서 핵무기 양산체제에 들어갈 계획인 것 같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핵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의 나머지 다섯 나라는 북한에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촉구하지만 북한이 응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전례대로 중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아가며 6자회담에 돌아와도 북핵 문제 해결로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동안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한 제재와 함께 별도의 외교적인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빠져나간 5개국 간의 협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유일한 외교적 방법이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첫째, 5자 간의 협의를 6자회담과 같은 성격의 ‘회담’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5자 협의는 다섯 나라의 대표단이 같은 장소에 만나서 정기적으로 회담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둘씩, 셋씩 또는 5자가 다 만날 수 있다. 실무자 장관 혹은 정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협의일 수 있다. 그런 회동은 5개국 외교장관이 다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정상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이뤄질 수 있다. 둘째, 5자 협의가 6자회담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 6자회담의 재개를 도와주는 방편이어야 한다. 과거 6자회담이 미북 양자 회담을 가능케 했던 것같이 5자 협의가 6자회담에 도움이 돼야 한다.
압박-외교-회유로 북핵 해결을
끝으로, 5자 협의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5자 회동만 성사되면 외교적 목표는 달성했다고 만족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5개국의 장관이나 정상이 회동해도 북핵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나친 기대나 과대 포장은 금물이다. 중국은 북한을 의식하여 5자 협의에 유보적인 태도를 가져 왔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위의 세 가지 사항에 유의할 때 중국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북핵 문제는 제재라는 ‘압박’, 5자 협의의 활성화라는 ‘외교’, 협조에 대한 보상이라는 ‘회유’, 세 개의 기둥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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